꿀벌 일지
꿀벌이 우리 집 텃밭 정원으로 이사 온 다음날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벌떡 일어나 창밖 벌통을 보았다. 벌통을 이동할 때 꿀벌이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 이동한다. 선생님은 꿀벌이 이동하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 열기가 식었을 저녁에 벌통 문을 열어주라 하셨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세 벌통과 내가 남았다. 벌통 문을 열면서 어떤 불안이 나를 덮쳤다. 우리 꿀벌들이, 지성을 갖고 있는 이 생명체들이 진돗개 백구처럼 아버지를 찾아 단체 귀성을 떠나지 않을지 말이다. 꿀벌은 다행히 바로 날아가진 않았다. 밤에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벌들은 닫혀있던 문이 열려 이제 좀 숨통이 트인다는 듯 날갯짓을 시작했다. 일벌은 날갯짓을 통해 집안 공기를 밖으로 빼내 환기를 한다. 경비벌로 보이는 벌은 문 주변에 뭐가 있나 살폈다.
벌이 지금 떠나가진 않았지만, 아주 안심되지 않았다. 토종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을 버리고 떠나버린다고 한다. 토종벌이 지금껏 아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술이면서, 인간이 길들일 수 없는 영역이다. 새 벌통은 서양종 벌이지만 나무꾼을 떠나버린 선녀처럼 빈 벌통을 남기고 떠나버릴까 걱정이 됐다. 벌들이 떠나온 고향으로부터 우리 집은 겨우 3km 떨어져 있을 뿐이다. 이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꿀벌 티나 입고 다니는 녀석에게 우리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는 수만 꿀벌의 야간 결의가 이뤄지고 있진 않을까. 홀아비가 될지 모른다는 외로움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이미 깨어난 벌들은 이사 온 집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붕붕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렸다. 자리를 지켜주었구나. 나는 벌통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새 식구가 된 벌통 하나하나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았다. 많은 벌이 집 앞에서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날았다. 새로 이사 온 이곳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곳을 떠나자는 토론 같기도 했다. 옆에 서있으려니 벌들에게 공청회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 있다가 쏘이는 게 아닌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헉! 마지막 벌통이 뭔가 이상했다.
벌통 앞에 꿀벌 사체가 떨어져 있다. 하나, 둘, 셋… 무려 일곱 마리. 일곱 사체 중에는 애벌레도 성충도 섞여 있었다. 세 개 벌통 모두 그랬다면 원래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하나의 벌통만 이런 상황이었다. 겨우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게다가 다른 두 벌통은 부산스러운데 이 벌통만 조용했다. 비행을 나오는 벌이 거의 없었다. 벌들의 침묵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응애? 말로만 듣던 진드기 피해인가. 벌들의 아버지가 말했던 석고병일지도. 아니야, 이사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인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실전은 언제나 공부의 장이다. 자신 있다 생각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마음이 조그라 들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 현상을 알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갔다. 봉순이 사체 더미라니.
목장 일을 하면서 젖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염소를 들여와 풀을 먹인다.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낳는 것을 보았다. 크고 오래 사는 동물들만 보아 오다, 짧은 수명의 곤충을 키우는 게 다르긴 달랐다. 꿀벌은 40여 일을 산다. 가장 활발한 계절에는 하루 수천 마리가 태어나는데, 그건 거꾸로 비슷한 숫자가 매일 죽는다는 말이었다. 매일 수천 마리 꿀벌이 죽는데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바깥에서 마지막 임무를 다하던 중일 수도 있고, 집안에서 쉬던 중일 수도 있다. 그걸 장례벌이 바깥으로 빼낸 것 아닐까? 꿀벌은 나이를 먹을수록 엉덩이가 더 까매진다고 한다. 죽은 벌의 엉덩이가 진한 검은색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검은색이 진한 벌은 괜찮다는 말이구나. 음. 음.
(하지만 검정색과 진검정색의 차이는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