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처음인데 학생엄마는 정말 처음이에요
드디어 여름방학이다. 학생에게 방학은 언제나 선물이다. 하지만 임산부에게는 다른 얘기다. 특히 나의 경우에 그랬다. 새로운 학교 생활도 재밌었고 매일 학교를 다니는 것이 임산부인 내게는 큰 활력이 되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더라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빨리 출산휴가를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는 아무런 업무 스트레스는 없는데 내가 매일 가야 하는 곳이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것이 축축 처지기 쉬운 임신기간에 큰 활력이 되어주었다. 친구들과 점심도 먹고 대화도 하면서 임신기간의 힘듦도 잊을 수 있었고 심적으로 의지를 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여름은 또 왜 그렇게 더운지. 임산부가 그렇게 더위를 타는지 처음 알았다. 더운 여름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게 지루했다. 지금은 아이가 둘이나 되니 혼자서 집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사치인지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 당시에는 남편 직장이 있는 인천에 살고 있었다. 친구도 하나도 없고 서울 나가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 오기만을 기다리며 낮시간을 보내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 먹고 함께 산책을 했다.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어서 밤에는 쥐가 나는 날들을 보내던 여름밤의 끝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2015년 7월 28일. 전날 저녁부터 배가 아팠다. 예정일보다 빠른 날이었지만 규칙적으로 배가 아팠다. 남편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한다고 했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마침 그날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 내가 걱정되어서 가까운 곳에 사시던 작은엄마, 작은 아빠가 우리 집에 오셨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걱정해주시는 마음에는 감사하지만 남편만큼 편하지가 않아서 어른들 앞이라서 편하게 진통 소리를 내지 못하고 참았다. 그리고는 엄마가 오셨는데, 엄마는 당장 진통하는 딸보다 손님인 작은엄마, 작은 아빠가 우선이셨다.
배가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갔으면 되었겠지만 사실 나는 조산원에서 출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이 많았기에 자연적으로 출산하는 조산원에 다니게 된 것이다. 배가 아픈 아침에 원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일찍 가봐야 별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조산원에 가서 출산하기로 했다. 남편은 택시 타고 와도 시원찮을 판에 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하면 누군가는 요란스럽고 유별나다고 할 것 같아서 진통을 더욱 드러내지 못했다.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이 걱정하실 것 같아서 더 드러내지 못한 진통이었다.
남편과 차를 타고 조산원에 가는 길… 퇴근시간이어서 조금 막혔지만 다행히 안전하게 저녁 7시쯤에 조산원에 도착했다. 임신기간 내내 잘 살펴봐주셨던 원장님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로부터 겨우 2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본격적인 수축이 왔고 밤 9시경에 드디어 첫째를 출산하게 되었다.
조산원이 병원과 또 다른 것은 출산한 다음 날 바로 집에 간다는 것이다. 출산하면 2박 3일 정도 병원에서 지내고 산후조리원에 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조산원에서 출산했기 때문에 바로 다음 날 집에 갔다. 그리고 자연적인 것이 좋다며 산후조리원도 안 가고 바로 집으로 왔다. 마침 남편의 여름휴가 기간이 시작됐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는 나의 특성이 또 나와버린 것이다. 얼마나 힘든지 몰랐던… 산후도우미 분이 집에 2주 동안 오시긴 했지만 산후도우미 분도 바로 어제 태어난 신생아를 돌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탯줄까지 여전히 배꼽에 달고 있는 신생아였다.
산후조리원에서 아이 돌보는 방법을 배워 온 엄마가 아니라 생짜로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라서 산후도우미 분도 당황하셨을 것 같다. 우리는 더 당황스러웠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사랑으로 우리 아이를 돌보면 좋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에게 얼마마다 젖을 물려야 하는지, 잠은 어떻게 재우는지, 새벽에는 얼마나 또 자주 수유를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예전에는 다 이렇게 키우지 않았는가, 인위적인 출산과 육아는 필요 없다며 병원과 조리원을 무시했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옛날에는 대가족이어서 경험과 지혜가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대가족이 아닌 상황에서는 산후조리원에 가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인데 나는 자연적인 것만 고집하다가 그런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좋은 기억도 있고, 우리 부부 스스로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다. 하지만 둘째 출산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산후조리원에 간 것을 보면 이때 톡톡히 고생을 하긴 했나 보다.
여름방학 전에 학과 사무실에 출산으로 인한 특별 휴학에 대해 말해놨다. 휴학기간에 직접 신청하러 오기 힘든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니 직접 신청서를 제출해주신다고 배려해주셨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한 달이 된 날, 직접 휴학 신청서를 제출하러 오지 않았다고 지도교수님께서 신청을 받아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원칙대로라면 직접 휴학 신청서를 제출하고 지도교수님 얼굴을 직접 뵙고 사인을 받아야 한다. 조교님께서 대신해주신다고 하셨지만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지금은 어느덧 내공을 키운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첫째 모유수유 중에 장시간 외출한다는 것이 상상하지 못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도 교수님께서 휴학 신청을 받아주셨다.
엄마가 된다는 것도 내게는 처음인 일인데 게다가 학생 엄마로서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특별 휴학을 신청하고 2학기는 집에서 아이를 보게 되었다. 구구절절이 이야기하자면 힘들었던 첫째 육아의 기억… 아마 모든 엄마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지금 돌이켜보니 신생아 때의 예쁜 모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더 가슴에 남던 시간들…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조리… 그래서 나는 육아에 대해 정보를 얻을 곳도, 친구도 없었다. 엄마와 시어머니는 이미 예전의 기억을 다 잃어버리신 것 같았다. 아이가 얼마나 자는지 언제 자는지도 잊어버리신 것 같은 말씀을 종종 하셨으니까. 자연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다. 산후조리원에 가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미 경험해 본 엄마들은 별거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옆의 엄마가 어떻게 젖을 물리는지, 다른 아이는 어떻게 자는지, 조리원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케어하는지… 그런 모습을 곁눈질로 보는 것 자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다.
출산의 어리숙함은 벗고 육아는 뭐든지 배우는 자세로 임하기로 했다. 육아책도 읽고 인터넷에서 열심히 정보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나의 상황에 하나씩 적용해가면서 처음에 느꼈던 좌절감을 벗어나고 아이를 잘 케어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편도 일찍 퇴근하는 편이어서 남편과 육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만의 육아관을 세우고 방법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나에게는 출산과 육아라는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면, 우리 남편은 그 당시에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다. 자기 커리어에서의 변화를 모색하고 싶어 했다. 새로운 팀에 자원도 해보고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보기도 했다. 정체하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남편의 모습을 응원했다. 내가 스스로 찾아낸 도전들도 있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찾아온 출산과 육아라는 변화들도 결국은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의 회사에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회사가 어려워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