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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휸 Aug 10. 2023

어느 신간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뭐에 밥 먹니-걱정하시는 엄마에게 된장찌개도 끓여먹고 잘 살아요-했는데

맛있다를 연발하며 반찬을 싹싹 긁어 고봉밥을 해치운 나는 그만 들켜버렸을까.


서럽게 목이 컹컹 막히던 3월을 일러바쳐야지, 했지만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주한 드라마에 시름은 어느새 무게를 잃고

제 집에서 편히 자겠다는 강아지에게 흘기던 눈도 자울대다 스르르 감겼던 토요일 밤.


이튿날 고향 친구들과의 재잘거림을 사진 한 장으로 남기자

야속한 버스는 어김없이 이 도시에 나를 내려주었다.


터미널을 뱅뱅 돌다 허기져 빵 한 봉다리 샀는데도 여전히 무언가 고파

서점을 한참 거닐다 보니 이 책 저 책 와닿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앞의 몇 장을 읽었을 뿐임에도 야트막한 눈의 이랑이 찰랑거린 것은

오직 어느 신간 앞에서였다.


봉투 속 빵들을 한 켠으로 몰아 꾸역꾸역 책의 자리를 마련하자

두둑해진 손과 마음을 가지고 쫄래쫄래, 나는 다시금 세상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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