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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녀녕 Mar 04. 2024

부암동 파스타집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다

[봄: 제7부]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이 많고 건물들이 빽빽한 번화가 보단 한적하면서도 가게가 드문드문 있는 장소를 좋아했다. 그래서 집에서 꽤나 먼 거리임에도 불과하고 부암동으로 마실을 가곤 했다. 그리고 그 동네에 가면 항상 방문하게 되는 파스타집이 있다. 1층에는 자전거를 팔고 있는 가게가 있고 그 파스타집은 바로 위층에 자리 잡고 있다. 혹여 왜 그렇게 그 파스타 집을 좋아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장님 만에 철학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음식을 파는 가게를 좋아하는 이유가 특별한 맛이나 분위기가 아니기에 다소 생뚱맞은 답변이라고 느낄 수 있겠다.


그 가게를 처음 방문했던 게 대략 10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가게를 꼽아보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파스타집을 고를 것이다. 처음 그 파스타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를 떠올려 보면 두세 개 테이블이 있었고 주방의 경계가 없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가정집 주방의 구조와 비슷했다.  마치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음식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메뉴판 앞에 쓰인 말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메뉴판 앞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슬로우를 지향하는 곳으로 주문을 천천히 받고 만듭니다. 성격이 급해서 기다리지 못하시는 분들은 다른 곳을 가는 걸 추천합니다. “

 라고 적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통 음식을 파는 가게는 빠르게 음식을 만들고 파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경쟁시장 속 모습이다. 하지만 이 파스타집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며 그 기세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독특한 점은 주문받는 방식이다. 그때 우리 앞에 앉은 다른 테이블에 주문을 받았고 주인아저씨는 나와 눈이 분명 마주쳤음에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앞 테이블을 위한 파스타와 다른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하려고 기다렸던 친구와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곧 주문을 받으시겠지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주인아저씨는 앞 테이블 요리를  완성하고 그 요리에 사용했던 요리 기구들을 깨끗이 설거지를 마친 후에야 주문을 받으러 오셨다. 처음 경험해 본 주문 방식이라 적잖이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 테이블 음식을 받고 친구와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사장님은 우리 다음으로 들어왔던 뒷 테이블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설거지를 시작하셨다. 그때 나는  그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단순히 만드는 사람이 아닌 예술가로 보였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일관되면서도 자신만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예술 활동이고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내가 이 파스타집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이와 같다.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두지 않고 그 가치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구나를 사장님의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장님의 철학이 담긴 공간을 머물면서 그 당시에 나는 스스로에게 왜 그런 모습을 동경하면서도 쉽사리 따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약간의 자조 섞인 질문을 했었고 어떠한 기준을 타인에게 치우쳐 두고 지내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이 파스타집을 방문해 보곤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과 느낌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여 이 파스타집을 방문하게 된다면 음식이 느리게 나온다고 노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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