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답은 없다
[ 가을: 제5부 ]
보통 차를 우려 마실 때 우리는 정해진 방법에 따라 마시곤 하는데 그 방법은 인터넷검색이나 차 관련 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보통 녹차의 경우 50~70도에서 1분 내외로 우려 마셔야 한다고 하며 홍차는 매우 뜨거운 100도에서 3분간 강하게 우려 마셔야 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처음 차를 접할 때 이 방법으로 차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마시곤 했다. 하지만 연희동 찻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차에 대한 상식을 보다 넓혀준 계기가 되었다.
그 찻집을 방문할 때 짙은 낙엽이 떨어지고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었던 걸로 기억되는 걸로 보아하니 계절은 가을이었다. 그 당시에 그 찻집이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곳으로 방문한 사람들의 방명록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목을 끌었던 점은 특이하게도 주말에 티코스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티코스라고 하면 종류별로 티를 우려 마실 수 있게 코스별로 차를 우려내어 주시며 차에 대한 설명과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 말로는 티오마카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삼사 년 전만 해도 마시는 차를 그렇게 운영하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기에 흔치 않은 곳이었다.
일행과 시간 맞추어 도착한 찻집에는 이미 먼저 도착하여 앉아있는 여성 한 분이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간략하게 찻집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며 이번 계절과 어울리는 어떤 차를 준비하였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날의 티코스의 순서는 목련차, 말차, 홍차, 호박차, 감잎차 순이었다.) 차에 대한 상식이 매우 얕았던 나에게 차도구를 이용하여 차를 우려내는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내가 차를 마신다고 하면 티백을 꺼내어 뜨거운 물에 몇 번 티백을 요란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우려내거나 티백을 충분히 우려냈음에도 컵 안에 두고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니 티백도 아닌 잎차를 꺼내어 거름망과 찻잔을 이용한 다음 찻주전자에 우려내는 모습이 나에게 얼마나 신선 했겠냐는 말이다.
처음 내어주셨던 차는 목련차였고 한 모금 맛을 보니 꽃향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목련차의 향을 좀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 방법은 차를 한 입 마시고 입을 다문 채 코로 숨을 내뱉는 것이었는데 확실히 처음 보단 꽃향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말차가루를 다기에 담아 차선을 이용하여 말차를 만들어주셨다. 그 맛은 매우 떫은맛이 느껴지는 녹차 본연의 진한 맛이었다. 사장님께서는 커피로 치면 에스프레소샷을 마시는 거라고 말씀해 주시며 쓴 맛을 맛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시며 물 한잔을 건네주셨다.
물 한잔을 마시며 다음 마실 차를 기다렸는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사장님께서는 밀크티를 마셔본 적이 있냐고 물으셨고 나는 끄떡이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밀크티라고 하면 홍차를 우린 물에 우유를 첨가한 티를 말하는데 거기에 달달한 맛이 추가가 되면 참으로 맛이 있다.) 그런 나의 말에 미소를 지으시면서 홍차에서도 은은한 밀크티 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시다며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방법은 매우 간단했는데 바로 차를 우려내는 시간이었다. 즉 다시 말해 일반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일단 홍차 잎차를 준비하여 거름망에 넣어둔 다음 뜨거운 물을 붓는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짧게 차를 우리는 것인데 그 시간은 30초 이내라면 매우 충분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려낸 홍차에서 정말 은은한 밀크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다 마신 찻잔을 거두시며 건넨 사장님의 말이 인상 깊었는데 그 말은 아래와 같다.
“차를 마실 때 어떻게 마셔야 한다는 방법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를 자주 마시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물의 온도와 맛을 찾아가면 돼요.”
그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날 만큼 기분 좋게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이 좋은 경험 덕분에 혼자 차를 마셔야 할 때 어떤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차를 우려 마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카페나 찻집을 방문하여 메뉴판을 보게 되면 쉽게 블랜디드티를 발견할 수 있다. 차를 가지고 에이드를 만들기도 하고 커피와 섞기도 하고 다양한 차를 혼합한 음료도 판매를 한다. 그만큼 차를 이렇게 마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많이 깨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차 마시는 방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인생 사는 방법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마치 정해진 방법으로 차를 마시는 것처럼 모범적이거나 보편적으로 잘 사는 인생이라는 틀을 고수하여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만의 차 마시는 방법을 가진 사람처럼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 선택을 하는 것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내리는 결정이다. 하지만 주변의 영향과 타인의 비교를 통해 행복한 인생, 잘 사는 인생은 어떤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따르곤 한다. 그 방법이 자신과도 매우 잘 맞는다면 매우 축하할 일이지만 그 방법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차를 마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과 나만의 차 마시는 방법을 찾아가듯이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만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법, 우리만의 잘 사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사실 나도 아직 나만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헤매고 있지만 말이다. 차를 마실 때처럼 강하게 우려 마셔보기도 하고 연하게 마셔보기도 하듯이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만의 인생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