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잃어가는 시대

여유가 없는 것일까 다정함을 잃은 것일까

by 아녀녕

[가을: 제13부]



한국이라는 나라를 소개할 때 과거에는 흔히 ‘정’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을 하곤 했다. 그만큼 타인에게 관심과 배려를 많이 베푸는 나라라고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알지 못하고 타인을 경계하는 게 더 익숙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정’ 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나라 혹은 ‘정’ 이 없는 나라라고 정정하는 게 올바른 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놀이터에서 모르는 친구들과 만나서 뛰어놀기도 했고 이웃집과도 안부를 물으며 간식도 나눠먹고 오고 가며 친하게 지냈던 걸로 기억난다. 그 당시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던 단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 단어의 말이 어색해질 무렵 많은 집전화기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핸드폰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언제든지 통화를 하고자 할 때 곧장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멀리 살고 있는 친구 혹은 가족들과도 언제든지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전보다 편해졌지만 그에 비해 갈수록 우리의 마음은 얇디얇은 종이와 같고 퍽퍽해져만 가는 것 같다. 발달된 기술에 비해 남을 생각하는 배려와 다정함은 점점 퇴보하는 것 같다. 예전에 나는 친구의 집에 전화를 걸어 안녕하세요?라고 운을 띄우곤 했는데 그때가 그립다. 그 사람에 집이 맞는지 묻고 안부 인사를 짧게 하며 전화를 하고자 하는 상대와 통화를 하곤 했다. 그게 한편으로 정겨우면서도 타인과 쉽게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던 것 같다. 즉 적당한 불편함이 주는 그 기다림 사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낭만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던 인간적인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핸드폰과 태블릿 그 외에 다른 전자 기기들을 손에 쥐고 놓지 않는다. 그 안에는 나의 관심사, 취미활동과 더불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풍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주변을 둘러보는 대신 자신에 손에 쥐어진 것을 바라본다. 이 편리함 덕분에 우리는 굳이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노력 보단 가까운 사람과 연락을 하고 취미활동을 하며 즐기는 일상이 편해졌다. 하지만 타인을 궁금해하지도 않기에 친구 혹은 지인이라는 영역의 벽을 오르기가 여간 까다로워졌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학창 시절부터 수업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부분이 시험에 나올 것이고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었다. 정말 과학이나 수학처럼 명확한 답을 가진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문학 수업만큼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오답일지라도 그 답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하며 서로 어떤 생각과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경험을 통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귀 기울여보며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삶이 팍팍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삶에 대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다정함이 사라진 것일까 생각이 들다가도 그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가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 또한 그만큼 수동적으로 되었기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해진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레트로 열풍이 그걸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예스러운 콘셉트의 식당과 카페 혹은 골목길과 한옥과 같은 고즈넉함을 찾는 게 우리 내면에 다정했던 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는 행동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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