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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May 26. 2021

엄마의 새로운 이름

우리 엄마는 '설성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당시에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던 '성순', 이름처럼 평범하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엄마의 인생은 다른 의미로 평범하지 못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장녀인 엄마는 3명의 오빠들과 3명의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그녀 나이 11살 때 일이다.


이른 나이에 연필 대신 칼을 쥔 엄마는 이름 석 자를 쓰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남들만큼 글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 획을 나아가는 데에도 적지 않은 눈치를 보는 엄마다. 요즘처럼 방문하는 곳곳마다 출입 명부를 적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신감이 더욱 떨어진다.


더욱 안타까운 건 힘들게 적어 내려 간 이름이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어 해 전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는 촌스럽다고 했다. 당신의 궂은 인생이 이름 탓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숨어 있는 듯했다.



몇 달 전, 엄마는 불쑥 사진 두 장을 보내더니 개명을 선언했다. 스님이 이름을 봐주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말 개명을 할 줄이야.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부터 바꿨다. 그리고 엄마를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효림아!" 이제 그녀의 이름은 '설성순'이 아니라 '설효림'이다.


우리 가족은 엄마라는 호칭만큼이나 새로운 이름을 많이 불러주었다. 개명한 이름을 자주 불러줘야 개명한 사람에게 더 좋다나 뭐라나. 여기저기서 '효림이'를 불러줄 때마다 마치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이처럼 엄마의 얼굴은 활짝 피어났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주체적인 선택을 내린 그녀의 미소는 3월의 개나리처럼, 4월의 벚꽃처럼, 5월의 장미처럼 밝았다.


엄마가 개명을 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엄마의 이름이 바뀌어도 나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엄마의 이름이 아무리 바뀌어도 나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없다는 것. 그것이 자식인 나에게는 무한한 안정감과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엄마가 '엄마라는 틀'에 갇혀 지낸 세월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초등학교를 중퇴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이름을 불리는 시간들을 포기하는 대신 형제자매를 위한 희생을 택하고, 누군가의 엄마 혹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설성순' 그리고 긴 세월을 지나 '설효림'이라는 이름을 찾기까지 그녀는 마땅히 기댈 곳 하나 없이 얼마나 헤매었을까.


엄마의 개명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올해 그녀가 환갑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을 기준으로 바로 내일이 엄마의 생일이다. 환갑의 해에 다시 태어난 엄마의 이름. 엄마의 개명에는 이름을 고친다는 뜻의 개명(改名)과 새로운 생명이 문을 연다는 뜻의 개명(開命)의 의미가 함께 깃들어있다. 나는 이름과 함께 엄마의 인생도 새로 시작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엄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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