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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Jun 09. 2021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우리 엄마는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내색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엄마가 자주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면 애써 말하지 않아도 사무치는 그리움이 느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나훈아 선생님의 노래 중에 '어매'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는 이렇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 낳을라거든 잘 났거나 / 못 낳을라면 못 났거나 / 살자하지 고생이요 / 죽자하니 청춘이라 / 요놈신세 말이 아니네"


나훈아 선생님의 목소리만큼이나 한이 맺힌 엄마의 '어매'를 들으면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진다. 그 시절 엄마에겐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던 걸까. 부모를 떠나 보내고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감정을 짐작하기 무섭게 슬픈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무거운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재빨리 생각을 털어내었고 결국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 전 언니랑 나와 대화를 나누던 엄마는 불쑥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


아이쿠. 방심한 사이에 눈물샘이 건드려졌다. 나는 엄마와 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눈물을 훔쳤다.


"지금 손주 새끼들한테 이렇게 잘해주는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먹으니 못해준 것만 생각나."


60이 넘은 엄마도 누군가에게는 딸이었구나. 우리 엄마 아직도 엄마가 그립구나. 그리운 마음은 평생 잊히지 않겠지. 어떻게 하면 엄마를 달래줄 수 있을까. 엄마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까. 하늘을 바라보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외할머니를 불러본다.


우리 집엔 또 다른 엄마들이 있다. 세 명의 언니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엄마라는 역할과 여린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언니들에 피할 수 없는 우울감을 안겼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에게 온 집중을 쏟아 붓는 과정에서 환경은 이미 변했고 갈수록 사회와 멀어지는 느낌은 그녀들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버티고 견디다 못해 언니들이 내린 선택은 친정집에 가는 것. 첫째 언니는 친정으로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목소리가 밝아지고, 둘째 언니는 엄마에게 형부 흉을 보느라 신나고, 셋째 언니는 친정에서 육아의 짐을 나누며 그간 초조하고 조급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얼마 전에 둘째 언니가 왔다간 것 같은데 다음 주엔 셋째 언니가 다녀간다고 하고, 그 다음엔 첫째 언니가 친정에 간다는 소식을 듣는다. 


딸들이 온다는데 반갑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돌도 안 된 아이를 돌보는 셋째 언니도, 일과 육아 모두 해내느라 바쁜 워킹맘 둘째 언니도, 천방지축 두 남매와 매일 지지고 볶는 첫째 언니도. 30대 엄마들에겐 엄마가 필요하다. 그리고 엄마와의 마지막 기억이 50년 전인 60대 우리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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