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상자체가 옆짱구라 머리를 기를라고 치면 소위 거지존이라고 하는 그 모습에 아주 꼴 보기 싫어지기 때문에 짧은 머리를 주로 선호했었다. 그리고 긴 머리를 해서 가르마를 타면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것 같아 나이가 들면서 짧은 머리를 주로 했었다. 또 어깨도 넓어 보이기도 했고,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하지만 짧은 머리는 젠틀함이 없고 그저 약간 느낌이 날린다(?)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100% 만족 못하는 것도 있긴 했다.
그녀도 나의 짧은 머리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짧은 머리일 때 그녀가 날 처음 본 것도 있고, 한동안 그 머리로 다녔으니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를 하면서 머리를 기를 거라는 다짐을 하며, 그녀를 약간 아쉽게 하긴 했는데 그 머리를 길렀던 것이 아주 미세하게! 짧은 머리를 좋아했던 그녀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다.
난 왜 그때 머리를 길러서 다른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걸까?
난 연극 보는 걸 좋아한다.
임팩트 있는 영화도 물론 좋고, 음악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뮤지컬도 좋지만 연극을 더 좋아한다. 조그마한 소극장에 불편하게 앉아 배우들의 표정변화와 관객들과 호흡하는 연극을 보고 있자면 시간이 금세 지나갈 정도로 한때는 즐겨 보기도 했다. 물론, 혼자서 보는 경우는 드물었고 친구 혹은 연인과 같이 본 시간이 더 많다.
내가 연극을 처음 접한 시기는 대학생 때이다. 처음 본 연극은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명한 연극은 아니었다. 다만 대게 슬픈 연극이었는데 아직도 그때 여자배우의 펑펑 우는 연기가 눈에 아른 거린다.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그렇게 기억하는 건 그만큼 나에게 임팩트를 줬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2D의 느낌보다는 3D의 눈물이 나에게 연극을 보러 오게끔 하는 영향을 주었다.
연극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로맨스물이어야 하며 소극장에서 봐야 한다. 물론 세계적인 뮤지컬을 봤는데 작은 소극장이 주는 감정전달의 길이를 줄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꼭 제일 앞줄 이거나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연극을 보며 배우들의 호흡, 표정, 연기 등을 본다.
그녀와 난 연극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보러 가자고 해서 본 것이었고, 연극의 소재도 처음 보는 19세 이상만 관람 가능한 연극이었다. 앞서 말하지만, 19세 이상이라고 해서 엄청 야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15세 이상이어도 이상하지 않는 그저 소재만 야한 그러한 연극이었다. 약간의 기대를 한 난(?) 약간의 실망을 했을 정도였으니 연령제한 연극에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마로니에공원을 가로질러 뛰어오던 그녀가 아직도 기억이 나며, 봄날씨에 햇빛을 받으며 오는 그녀가 이뻐 보였던 기억이 있다. 오자마자 늘 해맑게 웃어주며 말을 하는 그녀를 봤을 때 난 그때 연극을 보자고 한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연극은 아주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재미있었다. 내가 예약을 하면서도 후기를 봤지만, 그 후기는 그저 긍정적인 답변으로만 적혀있어 신뢰 없는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예약을 했지만, 근래 보기 힘든 아주 재미있고, 기억에 남을, 남에게 추천할 만한 연극이었다. 특히 다중배역을 하시는 신스틸러역의 "이광수" 닮으신 분이 너무나 웃겨서 그분이 없었다면 연극이 레벨다운할 정도라 그녀와도 연극을 보고 나서는 그분의 이야기로 한동안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거기 나오는 남자주인공 분도 누가 봐도 평균적으로 잘생겼다 생각할 정도로 외모도 뛰어났고, 연기도 잘했던 것 같다. 젠틀한 헤어며, 짙은 눈썹까지 외모면에서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고 할까?
그렇게 그날의 데이트는 기억에 남을 정도로 나의 나름대로 완벽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좋았고, 연애초반이었던 때로 풋풋했던 것 같다.
그때였던 것 같다. 그 남자주인공이 집에 돌아와도 뭔가 그 잘생김을 내가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물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 없는 노릇이지만, 뭔가 그 젠틀한 느낌의 잘생김을 머리를 기름으로써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머리를 기르다가 결국 짧은 머리로 다시 돌아오던 난.
그 연극에서의 잘생긴 남자주인공을 보고 젠틀하며, 성숙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를 기르겠다는 이상한 다짐을 하며, 그녀에게 통보를 했었다.
그녀의 약간 실망한 느낌은 그저 난 보지 않았고, 그녀가 뭐든 다 잘 어울릴 거라는 말에만 응원으로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그렇게 무작정 머리를 길렀고, 그렇게 헤어지고, 그렇게 다시 머리를 잘랐다.
다시 머리를 자른 이유는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그녀가 나에게 다시 기회를 줬었는데 그때 그녀가 좋아했던 짧은 머리로 그녀의 연락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때 길었던 나의 머리를 다시 짧게 잘랐는데 물론 그녀는 짧아진 나의 머리를 보진 못했지만.... 그렇게 지금까지도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난 잘생긴 배우를 따라한 것도 있지만, 지금 와서 막상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기보다는 연극의 다양한 남자주인공을 만나고 있다는 연애의 재미를 주기 위한 나만의 연애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머리를 기르고, 어떨 때는 다른 느낌의 옷을 입기도 하며 지루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그때는 정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오답이었다. 그냥 꾸준한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었고, 변하지 않을 거라는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되었다.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것만이 아닌 늘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신뢰를 주는 꾸준한 모습으로 그렇게 옆에서 묵묵히 있어야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