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그녀의 자랑
인기라기보다는 거의 교복 같은 신발이었다. 바깥에 나가면 꼭 그 신발을 신은 사람은 3명 이상은 봤었다는 전설의 스테디셀러인 신발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1년이 지나니 그것을 신으면 뭔가 유행에 뒤처진 아니 그냥 옷을 못 입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보고 유행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난 물론 패션과 관련된 이야기는 관심을 가지기에 흘려듣더라도 대부분 아는 이야기였고, 그러한 이야기하는 걸 또 즐긴다. 요즘은 분야가 바뀌어 그저 평균적인 내용만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건 아니기에 일반인들보다는 패션이야기는 많이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자신도 범고래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서로 사귀고 있지 않을 시기였고 그 이야기를 하며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자신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았다며 남들이 하는 것, 그 당시 출시가격보다 비싼 그 신발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제스처까지 귀여웠다. 물론 난 범고래가 없었다. 내 눈에는 이뻐 보이지 않았고, 그저 가지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다 신는 신발은 나의 취향과는 달랐고,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샀을 것이다.
산책을 하다 범고래를 신은 커플을 보았다. 유행은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저 커플이 신는다는데 그걸 평가할 수 있을까? 길거리에 4마리의 범고래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걸 지켜보며 뒤를 따라갔다. 실제로 따라간 건 아니고 같은 방향이라 그 모습을 계속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자랑했던 범고래를 난 보지 못했다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흘려버리고, 그 신발이 있구나 정도였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런 사소한 것도 관심 가졌어야 했던 거구나 후회를 한다.
그녀는 운동화를 잘 신지 않았다. 가끔 신더라도 나이키 데이브레이크(?)라는 모델을 신었었는데 편안해서 오래 신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녀는 플랫슈즈를 많이 신었는데 특히 검은색 가죽플랫슈즈 아니면 갈색 벨벳플랫슈즈를 많이 신었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사람 많은 곳에서 신발만 봐도 그녀라는 걸 알 정도로 그녀는 그런 신발류를 즐겨 신었다. 난 그게 싫지 않았다.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그래서 플랫슈즈를 선물해줬을 정도이니 난 그런 그녀를 보는 것에 즐거워했다. 그런 신발을 신고 방방 뛰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으니 뭐 범고래 따위야 뭐가 중요할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지만, 그렇게 기쁘고, 즐긴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느꼈다는 게 문제이다. 그때 당시는 그저 당연하게 생각되는 거였고, 익숙한 거였다. 이렇게 있을 때는 못 느끼는 것들이 없을 때 더욱 크게 다가와 마음이 저릿하다. 아프기보다는 이것도 이별이 주는 거치적거림이라 느끼면서 잊기보다는 그저 나의 잘못이라 생각하며 깊게 새기려고 한다.
4마리의 범고래를 보고 걷고 있다.
범고래를 보며 느낀 그녀가 신은, 그녀가 나에게 올 때, 기다릴 때, 같이 걸을 때 신었던 그녀가 좋아하는 신발들을 생각하며 지난 추억을 생각하며 후회를 해본다.
참 잘 어울렸다. 꼬물락거리는 플랫슈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