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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HYU Sep 20. 2023

난 좋아하는 음식이 없었어

늘 넌 그게 궁금했지?

그녀가 한 많은 질문 중에 기억에 남은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오빤 뭐 좋아해?"

였다. 좋아한다는 단순한 물음은 무슨 종류라는 게 빠졌지만, 상황을 이해하면 무엇을 좋아하는 거냐 묻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언갈 먹으러 가기 전 아니 그 이전 어디서 만나서 무엇을 먹을 거냐를 정할 때 한 번씩 나에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난 음식에 크게 욕심이 없다. 그녀를 만나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난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였으니....(하나는 빼고) 식욕은 당연히 없었다. 먹는 것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그 부분에 과감히 동의한다.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도 맛있는 무언갈 먹었을 때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나도 당연히 그러한 몸의 변화가 일어난다. 배가 고플 때 무언갈 먹으면 안정이 되고, 생각지도 못한 맛있는 게 혓바닥을 타고 나의 배로 들어왔을 때 즐거움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먹는 거에는 영 소질이 없다. 지금까지 음식은 배고플 때 먹는 에너지를 위한 도구였고, 안 먹으면 뭔가 허전한 정도라 생각나면 먹으며 살아왔다. 맛있다는 기준을 내 머리에서 딱히 나누기 힘들어 그저 내 입맛에 맞으면 그건 맛있는 것이었고,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건 나도 맛있다고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난 무언갈 좋아하는 음식이 딱히 없다고 생각했다. 한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먹는 스타일만 봐도 음식은 그저 먹기 간편하고, 배만 채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햄버거를 먹는 것도 그 이유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한동안 설렁탕에 빠져 집에서 가까운 설렁탕을 주구장창 먹은 적이 있었다.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냥 배고프면 설렁탕을 먹었다. 그 집 김치가 유독 내 입맛에 맞아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그냥 배고프면 설렁탕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음식을 난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연애를 하다 보면 먹기 힘든 음식도 먹는 편인데 그 부분은 좋아하는 음식도 없지만, 딱히 가리는 음식도 없어서 먹고자 하면 또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그러한 나의 모습에 궁금했을 거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슨 음식을 즐기는지.....

물론 이런 특성 때문에 많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연인으로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했을 나의 모습이었을 것인데 난 매번 그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두리뭉실하게

"나 다 잘 먹어."

"아~ 너 그거 먹고 싶어? 나도 그거 먹어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 그 말이 우리가 먹을 음식메뉴를 고를 때 그녀에게 안정감을 줬는지 모르겠지만(안 준 것 같다.) 그녀는 여러 번 물어보던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늘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봤고, 난 괜찮음을 반복했다.


산책을 하며 생각해 보니 그때 난 좀 더 단호하고, 명확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두리뭉실함에 그녀는 나에게 괜찮음을 물어본 것이 나름 부담이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난 그저 내가 이러한 음식 좋아해라는 말을 하면 그것에 한정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저 나만의 생각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녀는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나에 대해서 나랑 같이 먹을 음식을 먹을 때 고려보다는 그저 나란 사람이 궁금했던 것이었고, 난 그것을 마치 비밀인양 둘러 되었으니 사소한 것이지만, 이별의 스노볼 같은 게 아닐까?


난 안심돈가스를 좋아한다.

난 김치찌개보다는 차돌박이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난 그냥 김밥보다는 참치김밥을 좋아하고, 그거보다 오징어채김밥을 좋아한다.

난 우레옥에서 파는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숯불고기와 같이 먹는 싸구려 빨간 물냉면을 좋아한다.

난 삼겹살보다는 가브리살을 좋아하고, 항정살의 기름진 맛도 좋아한다.

난 소고기는 등심보다는 갈빗살을 좋아한다.

난 햄버거는 데리버거를 좋아한다. 즉 맥도널드보다 롯데리아를 좋아한다.

난 신김치보다는 갓 담근 겉절이 김치를 좋아한다.(엄마가 나중에 날 데려갈 색시가 힘들다고 할 정도로)

난 풀떼기 종류를 좋아한다. 드레싱이 가득한 샐러드, 제철 나물류 등 대신 비빔밥은 예외다

난 데리야끼 소스가 들어간 혹은 간장베이스의 달달한 음식을 좋아한다.

난 커피는 연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라떼류는 텁텁하다.

난 아이스크림은 더위사냥을 좋아한다.

난 배스킨라빈스보다는 나뚜루의 소르베 종류를 좋아한다. 유제품은 텁텁하다.

난 매일유업의 소화 잘 되는 우유를 좋아한다. 우유를 좋아는 하지만 어느 순간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난 대창덮밥을 좋아한다. 가끔 턱이 아프지만, 기름진 그 맛은 진리다.

난 그릭요거트는 봄에 먹는 걸 좋아한다. 그때 딸기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난 파스타는 빨간 거보다 하얀 것이 좋다.

난 치킨을 좋아한다. 특히 교촌치킨의 레드윙만 먹는다. 물론 다른 치킨도 먹는다.

난 피자를 많이 먹지 않지만, 그나마 많이 먹는 건 파인애플이 들어간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한다.

난 커피류 보다는 차류를 더 좋아한다. 어릴 때 다도부 부장이었다.

난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맥주를 좋아한다. 특히 클라우드드래프트 와 OB맥주를 좋아한다.

난 양주 중에는 위스키보다는 데낄라를 좋아한다.

난 회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중에서는 오징어회를 좋아한다.

난 꽃게찜을 좋아한다. 하얀 거 말고 빨간 양념된 꽃게찜은 제철에 먹어야 맛있다.

난 과자는 옛날 과자를 먹는데, 그중 맛동산, 홈런볼, 오예스를 좋아한다.

난 모든 과일류를 좋아한다. 하지만 열대과일은 예외다.

난 샤부샤부보다는 일본전골를 좋아한다. 이것도 간장베이스라서 좋아한다.

난 고축가루를 뿌린 짜장면을 좋아한다. 대신 짬뽕은 국물만 좋아한다.

난 족발보다는 보쌈을 좋아한다. 아니 보쌈김치를 좋아한다.

난 국밥류는 다 좋아하지만, 그중 돼지국밥을 좋아한다. 밀양에서 먹는 그 국밥을 잊을 수 없다.

난 파리바게트를 가면 무조건 둥그런 설탕이 가득 뿌려진 찹쌀도넛을 산다. 그걸 좋아한다.

난 콘푸로스트도 호랑이기운을 좋아하는데 무조건 설탕이 묻혀 있어야 하는 오리지널을 좋아한다.

난 라면을 즐기지 않는데 그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신라면건면을 좋아한다.

난 계란말이보다 계란프라이를 좋아한다. 어릴 때 형한테 늘 뺏겼던 기억에 간절함이 있어 맛있다.

사실 난 녹차물이 부어진 밥에 쌈배추를 젓갈에 찍어먹어도 한끼 뚝딱이다. 그걸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난 먹는 음식을 좋아한다.

전하지 못하겠지만, 너의 질문에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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