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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사랑하는 자

by 평 화

1

시골집에 오겠다는 동생에게 필름 카메라를 챙겨 와 달라고 부탁했다. 무엇을 담을까. 마당을 돌아다녔다. 이름 모를 꽃들을 찍을까. 색이 예쁜 파란 대문을 찍을까. 무와 배추를 찍을까.


필름 카메라를 구매하고, 쉼 없이 셔터를 눌러 댔다. 셔터의 촉감도 좋았고, 뷰파인더로 보이는 사람이 너무도 작아 한눈에 담기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인화된 사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필름 카메라는 필수로 챙겼다. 찍히는 걸 싫어하는 엄마, 그 옆엔 브이하고 있는 큰 이모. 할머니 옆에서 잔소리하는 외숙모. 축구하고 돌아와 땀으로 엉망이 된 작은 삼촌. 목줄 풀린 메리를 잡으러 다니는 큰삼촌. 거래처 전화로 바쁜 아빠. 안방에 누워 잠든 동생.


사진인데도 그날로 돌아간 것 같다.


필름 카메라를 든 동생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2

저녁 준비를 마칠 때쯤, 대문 쪽에서 자동차 주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달음에 달려가 파란 대문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길이 좀 막히더라고. 밥은?"


밥부터 찾는 동생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동생을 뒤로하고, 필름 카메라 먼저 받아 들었다. 한동안 상자에 보관된 것치곤 외관은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인화된 사진을 봐야 알 수 있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언니는 언제 사진 찍는 걸 그만뒀지?"


언제였더라. 할머니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였을까. 발을 절뚝이던 것이 갈수록 심해졌을 때였을까. 흰머리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염색하던 사람이 백발인 채로 살아갔을 때였을까. 숟가락 들 힘이 없고, 젓가락을 수시로 놓칠 때였을까.


인간은 익어간다. 그것을 알면서도 인화된 사진을 볼 때면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느껴져서 관뒀다. 더 이상 잃기 싫어서라는 어리석은 이유로 하나의 취미를, 추억을 버렸다.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머리맡에 필름 카메라를 두고서, 좋은 꿈을 꾸길 바라며.



3

다음날 아침, 동생이 말했다. 바다 보러 가자고.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추억 회상에 젖어가다 보니 금세 드넓은 바다가 나를 반겼다. 일렁이는 물결, 환하게 빛이 나는 윤슬에 휩쓸려 갈 것만 같았다.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펼치고, 바다를 향해 앉았다.


"언니 나는 바다가 좋더라. 조금 쉬고 싶을 때, 바다를 찾아."

"바다 좋지."


자리에서 일어난 동생은 휴대폰 카메라로 연신 바다를 담아댔다. 그 뒷모습을 보니,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무엇을 담아낸다는 건, 마음을 담아내는 것과 같다.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담아낸다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었다. 비록 아마추어 실력일 테지만.


자리에 앉아, 바다를 담는 동생의 뒷모습을 찍었다. 역광이라 어떻게 인화될지 예상가지만 담고 싶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으니 그것 또한 하나의 재미다.


모래성을 쌓는 동생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이곳에 나를 왜 데려온 것이냐고.


"바다는 넓잖아."



4

떠나는 동생을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파란 대문을 연 순간, 동생에게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는 내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언니, 다시 사진 찍어봐. 사진은 살아있잖아. 언니 표정 좋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네.'


마루에 앉아 바다를 떠올렸다. 동생을 찍은 그때의 감정이 수면 위로 드러나, 다시 붙잡게 했다. 들여다볼 때마다 크는 것 같은 배추와 무를 찍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꽃도, 파란 대문도, 사랑방도, 이곳저곳을 쉴 틈 없이 찍어갔다.


그제야 알았다. 사진에 담아야 할 것은 꼭 움직이는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모두 자신만의 속도로 익어가고 있었다.


나의 무지함에 대한 반성이, 다음 가을에 어떤 풍경을 안겨줄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한 시절을 마주하며 나의 필름 카메라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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