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사랑법
1
“할머니는 어떻게 할아버지랑 결혼하게 됐어?”
“니 이모할매가 하도 부추겨서.”
“그럼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결혼한 거야?”
“몰러. 까묵었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을 해갔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시기가 닥쳐올 줄 몰랐다. 결혼에 대한 고민에 잠긴 나를 보며 할머니는 “결혼이 전부는 아니지”라며 조용히 웃으셨다. 나는 그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님을, 결혼이 꼭 행복만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면 쥐 잡듯 몰아붙이셨다. 어린 나는 그런 할머니가 미웠고, 움푹 팬 볼을 가진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정자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빼빼 마른 할아버지를 보곤 했다. 나는 달려가 “나 왔다”라고 외쳤고, 할아버지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담배를 피우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2
할머니와의 추억은 많다. 하지만 이상하게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일화가 떠오르지 않는데도, 그저 좋았다.
나는 늘 제일 먼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인사했다. 뭐 했냐고 묻고, 어디 계신지 찾다가 보이지 않으면 습관처럼 광장 슈퍼로 뛰어갔다.
“우리 할아버지 여기 있어요?”
“잉? 아까 막걸리 두 병 사서 갔는디?”
그럼 어디로 가셨을까. 냇가에 갔을까, 종배 할아버지 댁에 갔을까. 어차피 작은 마을이라, 할아버지 이름만 크게 부르면 누군가가 알려주셨다. 기어코 찾아낸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는, 얼른 집으로 가자고 떼를 썼다. 마른 체구의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 힘에 이끌려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또 술 먹은겨!”
“아니야, 할아버지 나랑 놀다 온 거야!”
혼날까 봐 거짓말을 많이도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술 냄새에, 내 목소리에, 집 안 가득 묻어 있는 기척에.
“할아버지는 왜 할머니한테 뭐라고 못해?”
3
할아버지가 떠난 지 1년 반이 흘렀을 때였다. 나는 가끔 혼자 시골집에 계신 할머니가 밤이 무섭지 않을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잘 들려?”
“잉, 들려. 아가 왜!”
“무섭지 않아? 혼자 있는 거.”
“잉? 좋아! 걱정 말어.”
전화기 너머, 늘 자기 할 말만 하고 툭 끊어버리는 건 여전했다. 그러나 그 '좋다'는 말이 내겐 도리어 더 큰 걱정으로 다가왔다. 습관처럼 할아버지 밥상을 차리던 할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서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가시니까 어때?”
“편혀. 밥 두 번 안 차려도 되고 말이여.”
“그래도… 조금은 보고 싶지 않아?”
“술 담배를 그리 해댔는데 안 가고 베기냐?”
그 대답은 단호했지만, 단호함 속에 묘한 여운이 깃들어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은 둥글고, 세모지고, 또 네모난 모양이었다.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진 사랑이 맞부딪칠 때는 흠집이 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끝내 부딪치고 싶어 했던 마음, 그것이 바로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부딪히고 흠집 나더라도 끝내 부딪치고 싶은 그런 사랑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