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1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가을이
찾아왔음을 안다.
아직
때가 아님에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싶어진다.
감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해마다 가을이 오면 바나나 박스를 몇 개씩 들고 시골집을 찾았다. 황금빛으로 영글었을 모습을 기대하며, 푸른 잎과 열매가 익어갈 나무 근처를 기웃거렸다.
한겨울, 큰삼촌이 감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말씀에 함께 나섰던 적이 있다. 겨울의 감나무는 낙엽 한 장 없이 앙상했다. 보기에는 제법 튼실해 보이는 가지도 전지가위에 '툭, 툭' 잘려나갔다. 그 소리가 묘하게 아팠다.
"삼촌, 나무가 원래 이렇게 앙상했어? 몸통도 줄어든 것 같아"
"겨울나무는 다 그렇지. 가을에만 눈길을 주니 몰랐던 거지."
2
여름이 찾아왔고, 큰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조카, 감나무 가지치기 할 수 있겠는가?"
여름에는 꼬인 가지, 썩은 가지,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야 튼실한 감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창고에서 전지가위를 꺼내 들고 감나무 앞에 섰다. 꼬인 가지와 썩은 가지는 금세 눈에 띄었지만, 불필요한 가지는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만져도, 향을 맡아보아도 끝내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감나무에게 물었다.
"어느 가지가 너를 불편하게 해?"
감나무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내가 손을 뻗자, 바람이 불어와 잎사귀가 흔들렸다.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모두가 저의 일부인걸요.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어요.'
나는 가위를 내려놓았다. 한 걸음 물러서자, 비로소 감나무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어느 가지를 잘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3
쪼그려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감나무를 바라보다가 전화를 걸었다.
"삼촌, 불필요한 가지를 못 찾겠어. 감이 덜 익을까 무서워."
"참, 걱정할 것도 없다. 뭐시 무서워? 어차피 대봉시잖아!"
맞다. 홍시로 먹어야 하는 대봉시. 덜 익어도 괜찮은 감이었다.
불필요한 걱정을 할 때마다 이마를 톡- 쳐주던 삼촌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기 잘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매년 며칠간 후숙해 먹었던 감을, 도대체 무엇에 쫓겨 잊고 있었던 걸까.
방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끝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처음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덜 익어도 괜찮은 것을 잊고, 애써 잘라낼 것을 찾느라 애썼던 욕심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