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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버린 굽은 등

by 평 화

1

하릴없이 누워만 지낼 수 있는 곳이 시골이라 여겼다. 고요하고, 풀벌레 소리만 들릴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의 소리는 생각보다 우렁찼다. 트랙터는 하루에도 수십 번 집 앞을 지나갔고, 사람들의 대화는 다투는 듯 거칠게 들려왔다.


어느 날, 화장실 전등이 허무하게 깜빡이다 꺼졌다. 불이 나갈 줄 몰라 한참 당황했다. 밤이 오기 전 서둘러 마트로 향했다.


"뭐여, 불 나간겨? 혼자 할 수 있는가?"


이제 전등은 혼자 갈 수 있다. 집집마다 모양은 달라도, 이어진 전깃줄은 하나니까. 한 해가 지날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시골집에는 식탁이 없었다. 대신, 오래된 의자 하나가 안방 구석에 남아 있었다. 키가 큰 편이던 할머니도 전구를 갈 때면 늘 그 의자에 올라섰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제야 의자의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2

전구를 갈고 내려오다 허리를 삐끗했다. 등줄기까지 저릿한 통증이 길게 퍼졌다. 병원도 닫았고, 파스도 없었다. 냉동실의 얼음만이 나를 살렸다. 비닐팩에 얼음을 가득 담아 허리와 등에 올려놓으니 비로소 숨이 돌았다.


얼음은 몸과 여름의 열기 속에서 빠르게 녹아갔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이 시원했고, 저릿하던 감각도 얼음처럼 서서히 사라졌다.


몸을 닦으려 불을 켠 순간, 눈을 감았다. 새 전구의 빛은 낯설 정도로 강해 마치 건너편 집까지 비추려는 듯 눈부셨다.


나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등을 당연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꺼질 것을 알면서도, 켜져 있는 빛만을 믿고 있었다.


빛이 서는 자리마다

늘 어둠이 나를 등지고 있었다.



3

"당연과 영원은 없다."


나의 빨간색 일기장 속에서 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말이다. 왜 그때뿐일까.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결국 내 몸을 아프게 했다.


무얼 얻으려 욕심을 부릴까. 아픈 몸으로도 당신의 일을 놓지 못하던 할머니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왜 저렇게 미련할까. 가만 보면, 나는 할머니를 똑 닮았다.


내가 할머니 나이가 되면 나도 저럴까. 저 굽은 등이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다 사라질까.


할머니의 굽은 등은 당신의 삶의 무게였고,

나는 내 등을 꼿꼿이 세우려다 허리를 삐끗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등을 가졌지만, 결국 같은 무게를 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어져

나를 조금씩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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