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벗
1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었을 때였다.
나비가 찾아왔다.
어릴 적 할머니가 밥을 챙겨주던 고양이 이름이 ‘나비’였다.
"할머니, 고양이를 왜 나비라고 해?"
"나비 같잖여."
막연한 이유였다.
그래도 '야옹아'보다 '나비'가 더 익숙했다.
나풀나풀
날아라.
저 멀리서
볼 수 있도록.
나풀나풀 -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나는 그저 애틋하게 '나비'라고 불러만 봤다. 곁에 있는 내가 불편할까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찾는 것인지, 밥을 찾는 것인지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그렇게 한참 내 눈을 바라보던 나비는 물을 가지러 간 사이 사라져 있었다.
2
하루 종일 보이지 않을 때, 까마득한 밤이 찾아와도 할머니는 마당에 나가 기다렸었다. 혹여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까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기도 했었다. 거두어도 될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전하지 않아도 닿길 바라며 내내 그 자리를 지켰다. 마치 내가 할머니를 기다리던 것처럼.
"사랑방에 왔다가 갔을까. 차려놓은 밥상에 입을 댔을까."
꼭두새벽에 몸을 일으켜 사랑방으로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향이 흐릿해져 이곳이 그곳인지, 내 코가 망가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맴맴- 도는 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동트기를 알리려는 듯이 울어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점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랑방이다.
나비였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나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 같다. 밥 먹고 가란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3
이곳에 와서 사랑방 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방 안에는 나비를 위한 것들 뿐이었다. 나비의 밥그릇, 물그릇, 어디서 구한 것인지 모를 깃털 달린 장난감과 쥐 인형.
할머니의 작은 보물들을 챙겨 마당으로 나갔다. 이것을 어디에 두면 좋을지,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역시 나비만의 추억 장소에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사랑방으로.
사랑방 안이 아닌, 사랑방 문 앞에 두기로 했다. 오고 가며 잔향이라도 맡으라고.
먼지로 가득한 사랑방을 쓸고, 닦고 반복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동이 트고 있었다. 세상이 파랗게 변해갔다.
뚝뚝 흘린 땀이 이리 상쾌할까. 콧잔등에 스친 바람이 이리 시원할까.
사랑방을 비운 자리에, 새벽바람이 들어왔다.
웃고 우는 소리가 가득 퍼지네.
흔들리는 방울 소리에
너도 나도 춤을 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