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사랑을 하기로 했다.
1
밤공기가 맑다.
공기만으로 알 수 있는,
무더운 8월의 밤이라는 것을.
찌르르-
울어대는 것들이
소리에 틈을 주지 않고,
얼핏 물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랑하지 않았던 여름을, 옅은 사랑을 시작한 게 어느덧 한 해가 지났다. 내게 그저 덥기만 했던 계절이 사랑으로 다가온 건, 땅에 기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
작년 4월, 놀고 있는 밭에 일거리를 안겨주고 싶었다. 무성한 잡초를 뽑고 밭을 갈고, 검은 멀칭 비닐을 덮은 뒤 구멍을 뚫었다.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수박 모종을 작은 구멍에 심었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갔던 식물들이 죽어가던 과정이 스쳐갔다. 이번엔 다를 거라며 잔뜩 기대를 부풀렸다.
"흙이 좋으면, 노지에서도 잘 자라니 걱정 말어."
"흙이 좋아도 죽으면 어떡해?"
"거름이 되겄지!"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 작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방울토마토와 고추는 무성하게 자랐고, 수박은 마당까지 줄기를 뻗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심긴 참외도 싹을 틔웠다.
생채기 가득한 삶에,
뜻밖의 작은 열매가 맺힌 것처럼.
3
한동안 돌보지 못한 밭은 잡초가 주인이 되어 있었다. 호미, 곡괭이, 쇠스랑 도구들은 녹이 슬어 있었다. 손길이 닿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이렇게 아파버리는구나.
몸과 마음이 힘에 부치면
뚝뚝, 녹물이 떨어지고 만다.
뽑고 또 뽑았다.
유해한 것이 아님에도 나에겐 유해한 것들.
어쩌면 너도,
내가 유해한 생물이었을 테지.
깨끗해진 밭을 보며 캔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알 수 없는 해소감이 필요했다. 개운해야 할 것이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날은 저물어 가고, 밭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
해가 뜨자마자 시장에 다녀왔다. 8월엔 배추와 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미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고, 나는 어김없이 그 속에 휩쓸려 갔다.
노랗게 뜬 햇살 아래, 밭 주변을 걷다 멈춰 섰다. 어둠이 걷히자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나는 그동안 잡초를 뽑는 것에만 온 힘을 쏟고 있었던 거다. 유해한 것을 걷어내는 데만 집중하느라, 무엇을 심어야 할지 잊고 있었다.
묵은땅을 고르고, 새로운 모종을 심었다. 사랑이 필요한 계절, 더는 도망치지 않고 기꺼이 땀 흘려 가꾸기로 한다. 언젠가 이 작은 싹들이 무성한 잎을 틔울 것을 알기에.
이제 나는 비로소 여름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