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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의 균형

바게트와 단팥빵

by 평 화

1

시내 우체국에 들러 작업물을 부쳤다. 영업시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한적했다. 들어오면 안 될 공간 같은 기운에 눌려, 공기의 무거움에 눌려 대기표를 끊는 것조차 잊은 채 서둘러 하나씩 부쳤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무거운 공기에 지쳐버렸다.


짐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몸뚱이가 더 무거워진 듯했다.


다시 파란 대문을 향해 걷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발걸음이 멈췄다. 어디서 나는 향기일까.


짙어지는 향이 길을 안내하듯 이끌었다. 공간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두꺼운 유리문을 당겼다.


“어서 오세요.”


안에는 부드러운 향과 구운 빵의 색이 가득했다.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싶을 만큼 탱탱한 빵들. 나는 갓 나온 바게트와 단팥빵을 집어 들었다.


“파이가 아주 잘 구워졌어요. 가시는 길에 맛보세요.”


2

우체국에서의 공기와는 전혀 달랐다. 빵집이 나를 부른 건지도 모른다. 내 손에 들린 제빵사의 인심은 따뜻했고, 또 다른 무거움이었다.


설탕물에 젖은 파이 덕에 개미들이 잔칫날을 맞이했으리라.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길가의 나뭇잎 모양을 눈여겨보고, 날다 멈춘 잠자리를 발견하고, 구름 사이로 부는 바람의 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오전에 할 일을 마쳐 굳이 서둘러야 할 까닭이 없었다. 열두 시를 갓 넘긴 시간, 공원은 한적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속을 좀 채우라는 듯 내 마음을 좀처럼 알아주지 않는 허기짐이 또 울어댔다.


“그래, 아침도 안 먹었으니.”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던 걸까. 피노키오의 코처럼 기다란 바게트를 내 코에 대어보았다.


바게트를 한 줌 뜯었다. 속은 보기 좋은 기공으로 가득했다. 겉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속은 비밀을 감추려는 듯했다. 그러나 인간은 늘 속을 원한다. 나도 속살부터 뜯어먹었다.


3

툭툭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멀리서 내가 앉아 있던 벤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나를 지켜보던 것들이 이제는 탐색하듯 움직였다. 무엇을 알아내려는 걸까.


천천히 걷자. 바람은 시원했고, 묵은 때까지 함께 씻겨내는 듯했다. 저 나무는 이미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나무일까. 푸른 잎 사이로 매실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도 있었다. 모퉁이에는 9월의 아름다운 코스모스 몇 송이가 흔들며 반겨줄 것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결국 가고자 한 곳에 닿는다. 소요된 시간이야 중요하지 않다. 향기를 맡고, 그 향기를 좇아 하나하나 발견하는 길이 소중하다. 나는 지금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에 있다.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파란 대문을 활짝 열었다. 맞이해 주는 이는 없었지만 괜찮았다.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와도, 마음은 따뜻했다. 곧장 뒷마당으로 향했다. 장독대로 가득하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차가운 돌에 앉아 생각했다. 겉은 투박하고 단단해도 속은 부드러운 나는 바게트, 속이 달콤하고 포근했던 할머니는 단팥빵.


푸른 하늘과 잠자리 떼가, 아름다운 가을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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