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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는 [버거킹]이 없다?

아직도 멜버른 1일차

by 이멱여행자

대망의 호주 여행 첫날.

한밤중에 멜버른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풀고 나니, 배가 고팠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대충 때우긴 했지만, 긴 비행 끝에 허기진 속은 그걸로 채워지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뭐라도 먹을까?” 싶어 낯선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거리에 보이는 건 에먼 마라탕집뿐. 마라탕을 먹을 거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지 않나? 호주까지 와서 마라탕으로 첫 끼를 때우고 싶진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며 걷다가, 문득 눈에 띈 간판이 있었다.

‘Hungry Jack’s Burger.’

tempImage38vEu6.heic 잭이 도대체 누구길래?

“호주 로컬 브랜드인가?”

하지만 매장 안 메뉴판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폰트도, 구성도, 그리고 익숙한 메뉴 이름들까지—이건 명백히 버거킹이었다. 우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이거, 버거킹 짝퉁 아니야?’


아리송한 기분으로 키오스크 앞에 섰다. 메뉴판에는 와퍼(Whopper)라는 단어가 당당히 적혀 있었다. ‘와퍼’라는 게 혹시 그냥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버거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단어일까? 설마 그래도 호주 같은 나라에서 대놓고 버거킹을 베낀 브랜드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고민 끝에 나는 오씨 와퍼(Aussie Whopper)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문 순간—

“아니, 이건 그냥 버거킹 와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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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익숙한 맛이었다. 패티, 소스, 번, 모든 게 버거킹과 똑같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챗GPT를 열었다.

“GPT야, 헝그리잭스버거가 설마 버거킹 짝퉁이야?”


그리고 돌아온 답변.

[헝그리잭스는 ‘호주판 버거킹’이야!]


읭? 너무 단순한 대답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거지?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야기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호주에 진출하려던 버거킹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Burger King’이라는 상표가 이미 호주에서 등록되어 있었던 것. 결국, 호주 프랜차이즈 운영을 맡은 잭 코윈(Jack Cowin)은 고민 끝에 본사의 허락을 받아 ‘Hungry Jack’s Burger’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게 된다. 애들레이드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 거대 패스트푸드 체인의 신대륙 진출을 막은 셈이었다.


하지만 버거킹이 이렇게 끝낼 리 없었다. 1996년, 본사는 ‘이제 우리도 직접 버거킹 매장을 열겠다’며 잭 코윈과 계약을 끊고, 호주에 버거킹 직영점을 열었다. 그렇게 시작된 버거킹 vs 헝그리잭스의 전쟁. 하지만 잭 코윈은 물러서지 않았다. 20년 넘게 키워온 브랜드를 본사에 순순히 넘길 리 없었다. 결국 양측은 법적 공방을 벌였고, 7년간의 싸움 끝에 잭 코윈이 승소. 2003년을 기점으로 ‘버거킹’이라는 이름은 호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헝그리잭스가 모든 버거킹 매장을 인수했다.


결국, 이건 그냥 이름만 다른 버거킹이었다.


“호주에서 먹는 첫 음식이 결국 버거킹이네ㅋㅋ”

우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늦은 밤, 그렇게 배가 고팠던 이유는 결국 여행의 첫 끼로 ‘호주다운 음식’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민 끝에 들어간 곳이 결국 버거킹이라니. 그래도 스스로를 위안해보자면, 호주산 소고기로 만든 패티가 들어간 오씨 와퍼니까, 이건 사실상 호주 음식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헝그리잭스를 나서며 문득 깨달았다. 이런 예상 밖의 순간들이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예상대로 흘러갔다면 여행이 재미없었을 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주류 판매점에 들렀다.

호주 하면 역시 와인을 빼놓을 수 없지. 고민 끝에 가성비 좋은 브랜드를 골랐다. 방에 들어와 와인 한 잔을 마시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역시 현지 음료로 마무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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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장애 올 거 같은 주류매장에서 고른 와인과 또 국뽕 차오르는 오겜 감자칩으로 마무리하는 하루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겼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멜버른을 돌아다닐 생각에 피곤함도 잊혔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면서도, 드디어 시작된 여행이라는 설렘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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