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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 카페라떼, 예스 [플랫화이트]!

멜버른 2일차

by 이멱여행자

띠리따라띠라리로-따라리라-


오전 8시. 익숙한 폰 알람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낯선 침대에서 맞이하는 본격적인 여행의 아침. 오늘은 멜버른에서의 첫날이자, 본격적인 호주 여행의 시작이다. 이제 나갈 준비만 하고 아침 커피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어제 늦은 밤, 헝그리잭스와 와인 한잔의 여파일까. 익숙한 알람을 나도 모르게 손짓 한 번에 꺼버린 채, 우리는 무려 두 시간을 더 자버렸다. 최종 기상 시각, 오전 10시. 평소 해 뜨는 걸 보면서 자고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면 거의 새벽에 일어난 셈이었다. 하지만 ‘호주 여행의 로망’, 즉 [새벽같이 일어나 플랫화이트와 브런치를 즐기기]에는 다소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우리 기준에선 충분히 "꼭두새벽" 같은 기상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멜버른에서의 얼마 남지 않은 첫 오전을 즐기기 위해 부리나케 준비를 마치고 호텔방을 나섰다.

호텔 정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보인 풍경. 이 사진이 호주에서의 첫 '시각적' 기억이다

호텔 밖으로 한 발 내디디자 멜버른의 여름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한국처럼 후끈 달아오르는 여름과 달리, 이곳은 은은하게 따뜻했고 습도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여름이 이렇게나 상쾌할 수 있다니. 문득 한국이 궁금해져 날씨 어플을 확인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영하 저 아래로 곤두박질친 온도가 화면에 떴다. 무거운 롱패딩 대신 얇은 남방과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역시 동장군 피해 여행 오기로는 남반구가 답이구나." 여행 첫날부터 이렇게나 완벽한 날씨라니, 앞으로의 일정이 더욱 기대됐다.

햇살이 따뜻하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여행하기에 정말 최적의 날씨였다.

호주는 스타벅스가 힘을 못 쓸 정도로 동네 카페들이 잘되는 나라다. 비록 아침 일찍 일어나는 데는 실패했지만, 호주에 왔는데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순 없었다. 미리 구글 지도로 찾아둔 카페는 호텔 1층에 딸린 작은 공간이었다. 주문은 플랫화이트 한 잔, 그리고 소고기 파이 비슷한 랩 하나.

호주에서의 첫 플랫화이트. 한국에서도 종종 생각나는 커피다.

플랫화이트는 롱블랙과 함께 호주를 대표하는 커피다. 스팀밀크와 에스프레소 샷을 섞은 것이니, 카페라떼나 카푸치노와 비슷한 계열이긴 하다. 하지만 스팀밀크의 양 조절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다. 카푸치노보다는 우유가 많아 부드럽고 크리미하지만, 카페라떼보다는 적어 에스프레소의 향미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취향에 따라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카페라떼 중에서 선택하면 되겠지만, 호주에서는 무조건 플랫화이트를 추천하는 바이다.


여행자의 짧은 경험이긴 하지만, 내가 15일 동안 머물며 느낀 바로는 호주 카페들이 플랫화이트보다 카페라떼를 더 못 만든다. 여행 초반에는 다양한 커피를 경험하기 위해 플랫화이트 한 잔, 그리고 다른 커피 한 잔을 시켜보곤 했는데, 그때 카페라떼도 몇 번 주문해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플랫화이트는 어딜 가나 평균 이상의 맛을 보여줬다. 커피의 향미와 우유의 부드러운 밸런스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카페라떼는… 글쎄, 플랫화이트가 놀랍도록 훌륭했던 것에 비해, 카페라떼는 놀랍도록 평범하거나 심지어 별로였다. 한국에서도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카페라떼를 시켜보면 가끔 애매한 맛이 나올 때가 있다. 우유의 양이 애매하게 많거나 적거나. 호주에서 마신 카페라떼들이 딱 그랬다. 너무나도 감명 깊은 플랫화이트의 수준과 비교하면 격차가 확연했다.


사실 이런 경험은 과거 이탈리아에서도 겪은 바 있다.

이탈리아 하면 카푸치노! 그래서 한동안 카푸치노만 시켜 마시다가, 어느 날 문득 우유가 듬뿍 들어간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이탈리아 카푸치노는 양이 워낙 적어 한국에서 라지 사이즈만 마시는 사람이라면 분명 공감할 것이다. 아무튼,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커피는 다 맛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카페라떼를 시켰는데… 웬걸? 이해하기 어려운 맛의 카페라떼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한국 기준으로 맛없는 커피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여긴 이탈리아인데! 이탈리아에서 이런 커피를 마신다는 건, 마치 이탈리아산 김치와 한국 김치를 비교하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그때 받은 충격을 호주에서도 다시 느끼다니… 카페라떼 애호가로서는 다소 아쉬운 결말이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단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결론임을 밝히는 바이다. 나 또한 카페라떼 애음자로서, 이렇게 쉽게 결론 내리게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다시 여행으로 돌아가자.

아무튼, 우리는 호주에서의 첫 번째 플랫화이트를 마셨고, 만족스러웠다! 첫 카페는 ‘맛집’이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숙소 근처에 있는 평점 괜찮은 곳을 골랐고, 꽤 좋은 경험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정도가 호주 커피의 평균 수준이지 않을까. 그리고, 소고기 랩. 특별할 건 없었지만, 한입 베어 물고 나서 우리 둘은 동시에 외쳤다.

"이거 완전 동그랑땡이네?!"

패스츄리에 감싸인 고기 뭉치에서 고국의 익숙한 맛이라니. 특출난 맛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인상을 남겼다면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호주에서 커피를 빼놓고는 여행을 논할 수 없다. 우리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커피를 마셨다. 하루 두 잔 이상은 기본. 커피 자체가 맛있냐 없냐를 떠나서, 카페마다 개성이 뚜렷한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물론 한국도 커피 문화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와서, 한국에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커피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일부러 찾아야 하는 ‘맛있는 커피’를, 호주에서는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 이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선 이 점이 호주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남은 여행동안 우리는 정말 다양한 카페를 가고 다양한 커피를 마셨다. 여행기를 이어가며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할 테니 기대하시라.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난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멜버른 시내로 향하기 위해 근처 트램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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