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답을 찾지 말고 주께 답을 찾자

by Briony

2025년 가을, 올해 10월은 내게 특별고난주간이었다. 깨달은 게 있다면, 그저 주께 맡기기.

스스로 답을 찾지 말고 주께 답을 찾는 것이다.


인생이 평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인생에는 늘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무슨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내게 평안을 허락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았다.


아직도 나는 지하철 통근러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아니면 인생이 피곤해져서 그런지 낯선 이와의 부대낌도 상당히 불편하다. 머지않아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할 것 같다!

고난이 한창이던 시절 출퇴근길 멍 때림에서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라고 믿는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본다.


(네가) 서울대가 아니어도 괜찮아.
이 고난을 통해서라도 (네가, 혹은 너의 사랑하는 사람이) 바뀌어야만 한다면
하나님은 이 고난을 허락하신다.
몸과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자.



정말 길고 긴 10월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고, 교권보호위원회에도 참석해 보았다.

내 인생에서 이 두 가지 일만큼은 없었으면 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혹은 똥벼락인 게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시련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훅-하고 찾아왔다.


길고 긴 추석 연휴 동안 나는 그동안 참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쉼(休)을 얻었다.

시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얼마 전 교편에서 내려오신 시어머니께 친정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던 10월의 아픔들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시고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 이유는 어머니께서 너무 좋으신 분이라 그런가 보다.


나는 남편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께서도 아들을 보면 이런 감정을 느끼시려나?

자식이 귀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친정에 자주 가지 못했던 것 같다.

늘 친정 부모님께서 우리 집이나 동생네 집에 와주셨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님은 언제나 내가 잘하고 있는 큰 딸이니까, 잘 못하고 있음을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만, 남은 올 한 해는 의식적으로라도 쉬엄쉬엄하려고 한다.


공강시간에도 미친 듯이 일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지만 내일도 나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겠지?)



남편도 요즘 학교 생활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

타시도 내신을 써서 내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어떤 선생님은 시도간 전보가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과정을 통해 남편을 움직이실까?

교회에 가지 않겠다, 교회에 가면 할 게 없다 혹은 마음이 없다고 하는 남편의 마음이 열릴 수 있을까?

지난 주일 교회 근처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은 작정하고 남편을 궁지로 몰아세우라고 하신다.

이를테면, "교회 다녀야 결혼해 준다." (이건 너무 늦었고),

"교회 다녀야 아이 낳아준다." (이건 가능하다)고 기사님께서 결론을 내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30여 년 모태신앙이었지만 강요된 신앙은 절대, 결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 방법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이름에 들어가는 진짜 은혜를 남편이 경험하고 느끼길 기도할 뿐이다.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크리스천 부장님께서 남편과 결혼 전 해주신 조언도 기억이 난다.

작정하고 기도하라고. 신앙없는 남편을 위하 작정기도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도 믿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오히려 친정 부모님은 신앙이 없는 남편을 거부하지 않으셨다. 남편이 천주교 신자였고, 시어머니도 천주교 신자인 걸 아셨기 때문인가?


"같은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가 기다리자."라고 말씀하셨다.


비신앙인 입장에서는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결국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거부한다. 결국 기독교로 회심하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기독교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가니까. 이런 허무맹랑하고 믿어지지 않는 말들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믿기는 것을 어떻게 할까?

거리에 보이는 온갖 죄의 형상이 불편한데,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모든 것들이 죄악이고 모두를 종말로 이끄는 게 보이는 데 어떻게 할까?



나는 이제 신앙이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다.

오늘 퇴근길은 내가 근무했던 현임지에서 전임지를 지나는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죄악이 가득한 곳, 그곳의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들이 왜 그런지 이해가 되는 광경을 여럿 목격했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말해야 하고,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 비록 그들의 주변환경이 모두 이와 반대될지라도. 그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궤변 같아도 나는 복음(=기쁜 소식) 전하는 것을 멈출 수없다.


회심한 사도바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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