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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하지 못하면서 스치지도 못하고

by 정선생 Mar 09. 2025

사지 않을 물건은 구경하지 않는다. 인터넷 덕분에 사지 않을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때문에 이것저것 둘러보는 것도 두려운 시절이 되었다.


96년이었던가, 한양스토어라는 곳이 생겼다. 지금의 대형 마트까지는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큰 가게이니 만큼 내가 먹고 싶은 과자가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나가려고 했다. 어떤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가방을 열어 보라고 했다. 과자를 찾느라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그냥 나가는 내가 수상했던 모양이었다. 가방을 모두 열고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만 했다.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 같은 것도 없었다.

 

그 일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이후 원하는 물건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가게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가족의 쇼핑을 따라나설 때는 함께 들어가야 하지만, 내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라면 불확실한 가게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더라도 나는 구매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마트에서 판촉행사로 시식을 권한다. 나는 먹지 않는다. 이것도 보세요라고 말하는 아주머니 곁을 나는 죄지은 듯 지나간다. 나를 지목한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하지 않는 물건이 훨씬 많은 마트 안에서, 나는 죄인이 된다. 마트 물건을 사 가는 것은 맞으나, 코너 마다마다의 물건을 모두 사지는 못하는(않는) 나니까.

온종일 그곳에서 자신을 봐 달라고 요청하며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런 미안함과 괴로움은 하찮은 인간이 갖기에는 사치스러운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신에게나 어울릴 테니까. 하물며 나 같은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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