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벽과 나의 벽
'나'라는 벽에 갇혀 살아가면서..
아주 오래전, 항상 '까뮈'의 책을 들고 다니던 교회 누나의 기도제목은
'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기"였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의 권태'라는 의미 자체를 몰랐다.
많이 궁금했다.
마치 이름 모를 프랑스 요리를 대하는 느낌처럼.
몇 년이 지난 후, 따뜻한 봄날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권태'를 나는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의미 없는 '권태'의 무서움을 맛보았다.
세월이 흘러 세상에 대한 권태는 야속하게도 그 대상을 바꾸었다.
나 자신에 대한 권태로.
매일 같은 얼굴로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살아간다.
똑같은 말투로 비슷한 말들을 반복한다.
편견에 가득 찬 생각들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매일 느껴야 하는 감정들까지 비슷하다.
나 자신에 대한 권태는 때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처럼 느껴진다.
'나'라는 좁은 벽은 폐소공포증에 걸린 사람처럼 때때로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심지어 나의 벽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사용하던 단어들은 반으로 줄고, 알고 있던 지식들은 반의 반으로 줄어버린 지금,
절대 무너지지 않는 나의 벽은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건다.
하늘은 열려있으니 하늘의 별이나 보며 살라고.
최근 하루키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책을 발표하였다.
소설 주인공은 벽 안의 도시에서, 도서관에 쌓여있는 '오래된 꿈'을 읽어주는 일을 한다.
그가 나의 '오래된 꿈'도 읽어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