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도형의 병실에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몰려와 있었다.
옆 침대 여교수 때문이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기운이 다 빠진 사람처럼 앉아 도형에게 간단한 눈인사를 했다.
의사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후에 간병인은 작은 목소리로 도형에게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진짜 얼마 남지 않았나 봐.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네. 이제 길어야 한 달 정도라고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조카한테도 그렇게 얘기했어.”
“조카는 뭐라고 해요?”
“그냥 알았다고만 하지 뭐. 미국에서 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그럼, 아주머니도 이제 못 보겠네요. 서운하네요.”
도형은 정말 서운했다.
도형은 살아오면서 수없이 이어지는 헤어짐을 언제나 서글퍼 했다.
그는 아주 오래전 친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걱정할 거 없어. 이 병원에 노인 환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나는 계속할 일이 있을 거야.
이 병원에서 간병인일 도 벌써 3년째인데. 그러니 걱정하지 마. 자주 보게 될 테니. 참 자주 보면 안 되는구나.
이 선생은 빨리 부인이 회복해서 떠나야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주머니 뵈러 가끔 와야지요.”
“그럽시다. 이것도 인연이니까. 참 우리 교수님 돌아가시기 전에 지난번에 왔던 청년을 한 번 더 부르면 안 될까? 우리 교수님 영혼도 좀 달래줄 겸 해서.”
“아 진짜요? 또 오기로 했으니까 그때 한번 물어보죠.”
“그래요. 이번에는 내가 잘 좀 봐야겠어. 진짜 용한 점쟁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보면 아시겠어요?”
“내가 얘기했잖아. 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고. 척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니까.”
“지금 불러볼까요?” 도형은 간병인에게 물었다.
“ 지금 너무 늦지 않았어? 간호사들이 보면 뭐라고 할 텐데.”
간병인은 걱정하듯 말했다.
“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도형은 재임에게 전화했다.
“네.”
힘없고 차분한 재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병원에 와 줄 수 있어?”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옆 침대에 계신 교수님 알지? 그분이 이제 얼마 안 남을 것 같다는군.
그분하고 얘기 좀 시도해 볼 수 있나 하구.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부탁하셔서. 가능할까?”
“아. 그렇군요. 뭐 시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대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금방 갈게요.”
“아 진짜? 고마워. 기다릴게.”
재임은 교수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간병인도 긴장한 표정으로 재임을 지켜보고 있다.
십 분 정도가 지난 후 재임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재임은 표정이 찡그려지면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도형은 재임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임은 조금씩 몸을 떨더니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마치 귀신 들린 사람처럼 온몸을 심하게 떨더니 의자에서 병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숨을 쉬기 어려운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의식을 잃고 말았다.
도형도 놀랐지만, 간병인이 더 놀라서 간호사를 부르면서 뛰쳐나갔다.
재임은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죠?” 재임이 놀란 듯이 도형에게 물었다.
“응급실이야. 무슨 일이야? 정말 놀랐어.”
도형은 재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재임을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도 힘들어?” 도형이 물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재임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의사가 와서 재임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아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그냥 봐서는 영양실조 소견이 보인다고 했다.
“정말 놀랐어. 미안해 내가 괜한 부탁을 해서.”
도형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때문이 아니에요.”
재임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할 말이 있는데 할까 말까 망설이는 표정이라는 것을 도형은 읽을 수 있었다.
“뭔가 또 할 말이 있구나?”
도형이 재임에게 물었다.
“교수님과 대화는 해 봤어?”
“아니요, 못했어요.”
“그렇군. 난 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래서 교수님과 대화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재임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약간의 공포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다른 소리를 들었어요.”
“다른 소리? 다른 사람의 소리? 누구의 소리?”
도형은 아내를 생각했다.
“아니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
“신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뭐라고?”
“신의 소리를 들었다고요.”
도형은 당황스러웠다.
도형은 재임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반응하고 받아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무시해 버려야 하는지 판단하기에 어려웠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정말 내가 점점 더 미쳐가는 것일까요?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내게 이야기했어요.”
“글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그건 그렇고 무슨 소릴 들었는데. 그 소리 때문에 네가 쓰러진 거야?”
도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세히 좀 얘기해 봐.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으면 굉장한 거지 옛날 선지자들이나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는데.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어?”
“자신이 신이나 하나님이라고 하진 않았지만,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
재임은 망설였다.
“괜찮아. 이제 나에게 못 할 말도 없잖아. 편하게 얘기해 봐.”
도형은 재임을 안심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했어요.”
“진짜? 그거 굉장한 이야기네. 지구의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신과 이야기했다는 거네. 와, 대단한 일이네,”
도형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이야기를 한 거야? 네가 눈 감고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자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생명체가 죽으면 모두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했어요.”
도형은 재임의 목소리가 다시 흥분하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 좀 더 쉬어야 할 것 같다. 한잠 자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아니 괜찮아요. 그의 소리가 너무 크고 강했어요.
정말 강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마치 수천 명, 수만 명이 같은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감당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좀 더 쉬어야 할 것 같아. 생생한 악몽을 꾼 것으로 생각해. 한잠 푹 자고 나면 나아질 거야. 이제 맘 놓고 한숨 푹 자도록 해.”
도형은 웃음기를 지우고 얘기했다.
“꿈이 아니에요.”
“알았어. 우선 안정을 좀 취하고….”
“집에 가야겠어요.”
재임은 도형이 자기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안돼. 좀 더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것저것 검사도 좀 하고. 영양실조라고 하잖아. 링거 주사라도 다 맞고 가야지.”
재임은 자신이 맞고 있는 노란색 액체가 담겨있는 비닐 용기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맞고 있는 것만 다 맞고 가게 해 주세요.”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요.”
“알았어. 그렇게 얘기할게.”
재임은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한잠 푹 자.” 도형은 이불을 재임의 가슴까지 올려주며 말했다.
도형은 헛웃음을 지었다. 도형은 재임에게 또다시 깊은 연민을 느꼈다. 무엇이 이 젊은이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재임 곁에서 그를 끝까지 도와주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사기꾼 같지는 않던데. 어떻게 됐어?”
아내의 병실에 돌아온 도형에게 간병인이 물었다.
“괜찮은 것 같아요. 의사는 영양실조 같다는데요.”
“아이고, 영양실조? 지금도 영양실조 걸리는 사람이 있나? 아이고 불쌍해서 어떡하나. 아직 어려 보이던데. 가족은 없대?”
“네, 혼자 살아요.”
“나라도 먹을 것을 가끔 챙겨줘야겠네. 우리 아들 나이 정도인 것 같은데.”
“그러면 좋죠.”
“왠지 정이 가는 얼굴이야. 얼굴도 연예인처럼 잘생겼던데.”
“아주머니는 정이 참 많으시네요.”
“어려운 시대를 겪어본 사람은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알지.”
“하여간 감사합니다.”
“별소리를 다 하네”
며칠 후 도형은 고시원 휴게실에서 재임을 만나러 갔다.
“좀 어때?”
“저 영양실조 아니에요. 나름 꽤 잘 먹고 있어요.”
“정말, 그럼, 다행이고. 우리 방 간병인 아주머니가 네가 영양실조라니까 걱정을 많이 했어. 이거 갖다주라고 해서 왔어.”
도형은 스테인리스로 된 작은 통을 건넸다.
“불고기라고 하셨어. 여기는 조리시설이 없지? 다 조리된 것이니까 먹을 때 조금만 데워먹으면 된다고 하셨어. 영양실조에는 고기라 최고라고.”
“정말이요?”
재임은 감격한 사람처럼 눈물을 글썽거리며 통을 두 손으로 받았다.
“왜 눈물이 나죠? 정말 좋은가 봐요. 누가 나에게 이렇게 뭔가를 나누어 준 사람이 없었는데.” 재임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에이, 별거 아니라고 하셨어. 다 먹으면 또 얘기하라고 했으니 열심히 먹어. 그리고 기운 차리고.”
“네 감사합니다.”
“저 오늘도 좀 이상한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저랑 정상적인 대화를 기대하고 오신 건 아니시죠?”
재임은 잠깐 미소를 지었다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당연하지.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또 신의 음성을 들었어요.”
“또?”
“네.”
“ 또 기절하거나 하진 않았어?”
“네 괜찮았어요.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 무슨 문제가 있어?”
“네,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재임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어차피 난 네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도 돼. 미안한 얘기지만.”
“이제 곧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다 죽을 거래요.”
도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크게 소리 내 웃었다.
“미안해. 뭐라고? 지구인들을 모두 죽인다고 했다고?”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모두 다 사라져 버린다고 했어요.”
“언제? 언제 다 죽는데?”
“3년이요. 3년 안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대요.”
“그럼,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도형은 농담처럼 얘기했다.
“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했어요. 지구인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동안은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고 했어요.
나에게 그 사실을 지구인들에게 알려주라고 했어요. 그리고 준비하게 하라고 했어요. 죽음을….
지구의 생명은 이제 3년 남았으니 그동안 죽음을 준비하고 마지막 생명을 만끽하라고.”
도형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의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날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난 죽음이 무섭지 않아. 사실 내 아내가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래서 아내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지구인 모두가 죽어야 한다면 난 조금도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 테니까.
지구인들에게 알려주라고 했다고?”
“네.”
“어떻게? 조금이라고 비슷한 얘기를 꺼내면 정신병원에서 와서 당장 잡아갈걸?”
“그렇겠죠?”
“그러면 신에게 직접 하시라고 해.”
“사람들은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잖아요.”
“그렇군. 다시 한번 신에게 물어봐. 사람들이 믿을 만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네가 신을 부를 수 있어? 아니면 신이 찾아오시나?”
도형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내가 부른 적은 없었으니까. 갑자기 큰 에너지가 느껴지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 참 그건 그렇고 오늘 시간 있어?”
도형은 신 따위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이 물었다.
“왜요? 저 할 일 없는 사람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시간은 얼마든지 있죠.”
“아내를 한 번 더 만날 줄 수 있을까 하고. 한 번 더 아내를 만나 네가 아내의 소리를 듣는다면 모든 것을 다 믿을게. 네가 외계인이라는 것도. 신이 너에게 한 말도. 그 모든 것들을 믿을게. 아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얘기해 보고 싶어. 그냥 이렇게 죽어버리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
도형은 간절했다.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부인께서는 반드시 깨어나실 거예요. 부인과 대화를 시도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또 부인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선생님이 실망하실까 봐 걱정되네요.”
“이제 또 실망하지 않을 거야.”
도형은 재임이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Epilogue
눈을 떴을 때 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오래전 정신병원에 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안과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이 선생님의 다정한 표정을 보고 난 후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신의 소리를 듣다니.
난 왜 다른 걸까? 왜 남들과 다른 걸까?
이렇게 비현실의 세계 속에서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
나에게 말을 건 신의 존재는 사실일까?
이 선생님은 나의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당연하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 따위를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모든 곳에서 인종차별을 겪어야 하는 혼혈아처럼
나는 철저한 혼혈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