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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3. 2024

신의 고백(8화)

 재임은 도형과 같이 병실에 와 도형 아내의 팔에 눈이 내리듯 자신의 손을 살짝 얻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도형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침을 삼켰다. 

 다시 아내의 소리, 아니 아내와 대화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가까이 오세요”

 재임은 도형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아내를 만났어?”

 “네. 제 소리를 들으신 것 같아요. 지금부터 제가 중간에서 두 분의 말을 그대로 전달해 드릴게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세요”

 재임은 눈을 감은 채 말은 이었다.     

 “시작하세요.”

 도형은 작은 의심도 하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보 나야. 힘들지는 않아?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야? 지금 어디에 있어?”

 “힘들지 않아요. 힘든 건 당신이지. 나는 아주 편안하게 잘 있어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요.

 아픔도 느낄 수 없어요. 마치 아름다운 숲속을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이다. 혼자 있는데 심심하지 않아? 당신 혼자 있는 거 싫어하잖아. 심심한 것도 못 견뎌 하잖아?”     

 도형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아내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말했다.     

 “심심하지 않아요. 그냥 편안해요. 아기가 되어서 엄마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온 느낌이 들어요. 그냥 편안해요.

 당신이 좁은 병원에서 나를 간호 하느라 힘들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어요. 나만 편해서 미안해요.”     

 “아니야, 힘든 거 하나도 없어. 그냥 나도 당신 덕분에 쉬는 거지. 당신이 편하다니 정말 맘이 놓여.”     

 “당신이 해준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어요. 참 맛있었는데.”     

 “당신 깨어나기만 하면 바로 만들어 줄 수 있지. 그러려면 빨리 일어나야지. 혹시 당신 내가 보여? 아니 나의 소리가 들려?”

 “아니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어둡지는 않지만,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아요.

 그냥 좋은 음악 소리 같은 것만 들리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어요.

 재임 씨가 나를 불렀어요. 당신을 볼 수 없지만, 당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계속 편히 지내. 난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아.

 나 글쓰기 다시 시작한 거 알아? 당신 깨어나기 전까지 완성하는 게 목표였는데 쉽지는 않더라고.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다가 일어나. 알았지?”     

 “나 죽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갑자기 뭔 소리야 죽긴 왜 죽어. 그런 말 하지 마.”

 이 말을 하며 눈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도형은 느꼈다.     

 “아니, 죽는 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아요.

 죽어서도 또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그냥 알겠어요.

 그러니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 줘요. 내가 죽어도 슬퍼하지 말고.”     

 “그렇다면 다행이네. 알았어. 당신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게. 내가 곧 따라갈 테니까.”     

 “아니, 그러지 말아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와요. 그때까지 기다릴 테니.”     

 “알았어, 그렇게 할게. 뭐 다른 거 궁금한 것 없어?”     

 “소리가 점점 작아지네요. 나중에 또 이야기할 수 있겠죠? 아, 재임 씨가 또 만나게 해준다고 하네요. 감사하게. 또 만나요. 그럼”     

 “그래, 편히 있어요.”

 재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도형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일어나 휴지를 여러 장 뽑아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서재임. 너 진짜 뭐니? 진짜 사기꾼이야, 아니면 진짜 외계인이야? 그걸 믿으라고? 네가 외계인이라는 걸 내가 믿으라고?”

 재임은 도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부인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도형은 다리에 힘이 빠졌다는 듯이 병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재임은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도형의 어깨를 살짝 만지고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고시원으로 돌아온 재임은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또다시 신의 소리를 들었다.     

 <나의 소리가 들리나요?>

 <나의 소리가 들립니까?>     

 “누구시죠? 아 신이시군요?”     

 <나는 신이 아니에요. 하지만 딱히 나를 지칭할 말이 없으니 그냥 지구의 신이라고 해두죠.>

 이번에는 신의 음성이 전처럼 강하고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재임은 알았다.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지난번에 하신 말씀을 제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냥 지구인들에게 경고만 해 달라는 겁니다. 앞으로 3년 후에 지구의 모든 생명을 제가 다시 가져가겠다는 말이죠.

 원래 나에게서 나온 생명이에요. 이제는 시간이 다 되었어요. 모두 회수하겠다는 말입니다.>     

 “회수요?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이 사라진다는 뜻인가요? 그다음엔 다른 곳으로 떠나시나요?”     

 <그건 아직 얘기할 수 없어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지구에서의 시간은 이제 다 끝났어요.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당신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더 빨리 회수 작업을 시작하려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지구인들에게 나의 뜻을 전해줄 수 있으니, 3년 정도의 시간을 주려고 하는 거죠. 길고 길었던 인간으로서의 삶을 정리하라는 의미에서요.>     

 “지구의 모든 생명이 모두 당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요?”     

 <그래요.>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지구인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나도 당신에게서 나온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있나요? 난 외계에서 온 생명체인가요?”     

 <지금으로서는 나도 알 수가 없어요. 당신 영혼이 당신에게서 나와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 내가 알 수 있죠.>     

 “그럼 내가 죽어야 알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만일 내가 당신에게서 나온 생명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온 외계인이라면 나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죠?”     

 <당신이 나로부터 받은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또 다른 나와 같은 존재에게서 나왔겠죠.

 지구가 아닌 이 우주 어딘가에서.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의 생명 에너지는 당신에게 생명을 준 당신의 신을 찾아가야겠지요.

 하지만 너무 멀리 있을 거예요. 아마 당신의 생명 에너지는 꽤 오랫동안 우주를 떠 돌아다니겠죠.

 그러다 운이 좋으면 당신의 신을 빨리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이 걸릴 수도 있겠죠. 우주는 너무 넓기도 하고 너무 많기도 하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재임은 잠시 숨이 멈추어 버렸다. 재임은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죽어서도 나의 자아는 유지되나요?”     

 <당신 개인의 생명 에너지는 물론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겠죠. 감정들은 모두 다 사라지겠지만 대부분의 기억도 남아있을 거예요.>     

 “그럼, 지구인들이 죽으면 모두 당신과 하나가 되는 건가요?”     

 <맞아요. 현재의 나는 그동안 지구에 살았던 모든 생명체의 생명 에너지가 합해진 상태예요.

 소크라테스의 영혼도 나에게 왔고, 예수도, 나폴레옹도, 뉴턴도, 마르크스도, 아인슈타인도 모두 내 안에 함께 있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그럼, 당신은 과거 모든 이들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요?”     

 <맞아요. 모든 자아가 합쳐져 하나의 자아를 만들었어요. 원래부터 하나의 자아였지만.>     

 “당신은 언제부터 존재했나요?”     

 <그건 나도 정확하게 알진 못해요. 아주 오래전, 지구 시간으로 수십억 년 전쯤이겠죠. 캄캄한 우주 한복판에서 눈을 떴어요.

 아니, 보이는 것이 없었으니, 눈을 뜬 것은 아니었겠지.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몰랐어요. 나는 나를 느꼈지요.

 난 아주 작은 에너지 덩어리였어요. 그것이 나의 몸이었죠.

 주변에도 나와 같은 존재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난 그들과 약간의 교감을 할 수 있었어요.

 그들 중에는 나보다 강한 에너지를 가진 존재도 있었어요. 그곳에 있던 의식을 가진 모든 생명 에너지는 더 강하고 커져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았어요.

 그것이 마치 우리의 의무인 것처럼. 

에너지를 키우는 방법은 생명체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좋은 행성을 물색하여 그곳에 생명을 키우는 일.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밖에는요.

나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 오랫동안 헤매었지요.

생명을 키우고 자라게 할 장소를 찾아다녔지요. 그러다 결국 지구를 찾았어요.

 난 망설이지 않고 원시 지구에 나의 몸을 강하게 충돌시켰어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나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에너지 조각들이 질량을 가진 작은 유기 물질로 변하고 그 물질이 지구의 아주 작은 생명체로 탄생한 거죠.

 그 작은 생명체가 번식하여 점점 수가 많아지고 또 다른 생명체로 진화하여 지구에 번성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난 수십억 년 동안 지구에 생명체를 키웠어요. 인간들이 화초를 키우듯 나는 지구에 식물과 동물을 키웠어요.

 이제는 모두 거두어 다른 곳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거죠.>     

 “왜 지금이죠?”

 재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는 말할 수 없어요. 나도 그 이유는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지금이 그 시기라고 그냥 느껴질 뿐이에요.

 하여간 당신은 지구인들에게 알려주기만 해요. 3년간 행복하게 살라고.

 이제 마지막이라고.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죽음이 끝이 아니니까.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지구에서 지금까지 사라진 모든 생명체의 영혼이 다 당신에게 돌아갔다는 거죠? 당신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죠?.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식물도요?”     

 <작은 미생물들까지, 바이러스까지 내 몸의 일부죠.>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네요. 하지만 지구인들은 당신의 말을, 아니 나의 말을 믿지 않을 거예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난 미친 사람 취급만 당할 겁니다. 난 할 수 없어요.”     

 <당신은 내가 이야기하는 말만 전해주면 돼요.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내가 보여주면 되니까>     

 “ 당신은 전지전능한가요? 지구인들의 운명을 당신이 결정하나요?”     

 <당연히 아니죠. 나는 그냥 의식을 가진 에너지 덩어리에 불과해요. 나는 내가 만든 생명체들의 진화에도 관여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관여할 수 있었다면 인간을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나는 지켜볼 뿐이에요.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뇌를 이용해서 알아낸 모든 것들을 나도 알뿐이에요.

 한 사람이 죽어 나에게 오면 곧 나는 그 사람의 지식을 갖게 되는 거죠. 하지만 나는 행동할 수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지켜보는 것뿐이죠.>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죠? 저는 이해할 수 없네요”     

 <비유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을 해 보자면….> 

마치 신이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잠깐 말을 멈추었다.     

<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고 있죠.

 자기 삶의 모든 것들을 항상 기억하고 또 의식하며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필요에 따라서 기억하고, 또 기억을 억지로 불러오기도 하고.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써야 기억할 수 있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내게 합쳐진 모든 생명체의 삶은 나의 과거 경험과도 같은 거죠. 내가 원할 때 그 누군가의 경험을 난 불러올 수 있어요.>     

 “그럼, 당신은 지구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겠군요?”     

 <맞아요. 하지만 죽은 사람들의 지식과 생각뿐이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식은 내게 오지 않았으니 아직 모르죠. 스티븐 호킹 박사의 지식까지 나에게 있죠.>      

 “당신이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안다면, 인간들이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도 알 수 있겠군요. 인간이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하는지도.”     

 <당연히 알고 있죠.>     

 “그러면서도 든 인간을 죽이려 하시나요? 아니 인간뿐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모든 생명체는 어차피 모두 죽어야 해요. 당신이 그들에게 알려주라고 했잖아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아니요. 난 할 수 없어요. 심지어 난 지구인이 아닌 것 같다고요.”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나의 부탁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당신이 지구인들에게 전해 줄 말은 나의 작은 선물과도 같아요.

 마지막으로 3년간 생을 즐길 수 있도록.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나는 지금 당장 모든 생명을 가져갈 수도 있어요.>     

 “정말 어려운 일이군요”

 재임은 신의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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