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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3. 2024

신의 고백(9화)

신과의 대화를 마치고 재임은 도형이 생각났다. 

이 엄청난 이야기를 잠깐이라도 혼자서 감당하기에 어려웠다.

재임은 도형에게 전화했다.     

 “지금 병원으로 가도 될까요?”     

 “당연하지. 무슨 일 있어?”     

 “가서 말씀드릴게요.”     

 “그래 기다릴게.”

 도형은 재임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면서 겁이 났다.     

 재임은 도형을 만나자마자 신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도형에게 모두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재임의 모든 이야기를 믿어보겠다고 다짐했던 도형이지만 이번 이야기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냥 지구인들에게 알리지 말고 3년 후에 모두 죽이라고 해.”

 도형은 진지하지 않게 말했다.     

 “그렇게 가볍게 얘기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 심각하다고요. 내가 얘기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끝날 수도 있어요.

 3년이라는 시간은 신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다니까요”     

 “그 말을 믿을 사람도 없고, 설사 모두 믿는다고 해도 지구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말 거야. 아마 그 혼란으로 모두 미리 죽어버릴 수도 있어.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도형은 자신이 너무 뻔한 이야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말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니야. 믿어. 믿기로 했잖아.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한 달 후에 시범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만 명의 사람들을 먼저 데리고 가겠다고 했어요. 저에게 그 일을 예언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보라고 했어요.

 그 일이 일어나면 내 말을 믿을 거라구요. 한 달 후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정확히 만 명의 사람이 갑자기 죽을 거예요.

 그걸 먼저 나는 세상에 알려야 해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를 도와줄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으니.”     

 도형은 혹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도형은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방송국에 찾아가 봐야 하나?”

 도형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도형은 용기를 내서 몇몇 방송국과 신문사에 연락해 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마치 장난 전화를 하는 철없는 중학생 취급을 당하였다.

 신문사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까지 시도를 해 봤지만, 신문에 기사 한 줄도 낼 수 없었다.     

 “현수막을 달아볼까? 벽보도 좀 붙이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릴 수도 있고.”     

 “현수막 한두 개 달아야 소용없을 거야. 전국에 수백 개의 현수막과 수 천장의 벽보를 붙여야 할 거예요.”     

 “시간이 없어요. 한 달 안에 그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을까?”     

 “신에게 다시 연락해서 한 달만 더 연기해 달라고 해 봐.”

 도형은 농담처럼 웃으며 얘기했는데 재임은 그 말은 심각하게 들었다.     

 “아, 그래요. 가능할 수도 있어요. 한 달만 더 연기하면 될까요?”

 “그럼, 앞으로 두 달 남을 거잖아. 그 안에 준비해보자. 만약 사실이 아니면

 우린 허위사실 유포로 잡혀갈지도 모르는데. 우리도 그 일이 확실하게 일어난다는 확신이 없잖아. 증거를 보여달라고 해 봐.”     

 “저는 이미 증거를 보았어요.”     

 “뭐를? 어떻게?”     

 “내 앞에서 멀쩡하게 걸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을 봤어요.”     

 “아 진짜? 정말 그게 사실이란 말이야?”

 도형은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그 정도로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잖아. 사람 한 명이 우연히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사람뿐 아니라 여러 동물이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을 확인했어요. 한두 마리가 아니에요. 내가 지목하는 모든 생명체가 그런 식으로 죽었어요.

 신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요. 내가 들은 소리는 신의 음성이 분명해요. 절 좀 믿어 주세요.”     

 “정말 계속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나는군”

 도형은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실이에요.”

 재임은 단호하게 말하고 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두 달 후에 만 명이나 죽는다고?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한 100명 정도로 줄일 수는 없어? 그중에 우리도 포함되면 어떻게 해?”     

 “그분이 정하신 거예요. 제가 정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포함되지는 않을 거예요.”     

 도형의 말대로 만 명의 죽음은 한 달 더 연기되었다. 도형과 재임은 백 개의 현수막과 5천장의 작은 벽보를 제작하였다.     

 “3월 22일(목) 1만 명의 죽음을 대비하세요.”     

 현수막과 벽보는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심플하게 제작되었다.     

 도형과 재임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구하여 서울시 전역에 벽보와 현수막을 붙였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궁금해하기는 했지만, 그냥 독특한 광고문구라고만 생각했다.

 정해진 날을 도형과 재임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두 사람의 바람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만 명의 사람이 신의 예언대로 갑자기 목숨을 잃었다.     

 나라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걸어가던 사람이 쓰러져 죽기도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던 사람도, 스포츠 경기를 하던 사람도 순간적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모든 신문은 이 사건을 메인 기사로 다루었고, 모든 방송은 흥분한 뉴스 진행자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이 사건을 해석해보려고 노력했다.

 정부에서는 갑자기 죽은 사람 중 많은 수의 시신을 부검하였지만,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 각지에서 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갑자기 이유 없이 사망하였고 이를 예측한 현수막과 벽보가 서울시 전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TV 뉴스 진행자는 냉정함을 이미 잃고 흥분한 목소리로 방송하고 있었다.     

 도형과 재임을 병원 휴게실에 있는 TV를 통하여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도형은 신음하듯이 말했다.     

 도형은 또 한 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이젠 확실히 저를 믿을 수 있죠?”     

 “아니, 이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내가 현수막을 달고 벽보를 붙였지만,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정말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이제 어쩌죠?”     

 “곧 많은 수의 기자가 찾아오겠지.”     

 “아직 우리가 현수막을 걸었는지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네가 방송국을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     

 “제가요? 전 안 돼요. 전 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에요. 제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난 바로 붙잡혀서 다시 정신병원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요. 경찰들도 제 얼굴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저는 다시 정신병원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재임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도형이 자기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했다.     

 “난 아내 곁에 있어야 하잖아. 그리고 너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면 다시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을 거야. 너는 엄청 중요한 사람이 될 거야.”     

 “그래도 저는 안 돼요. 선생님이 같이 가 주셔야 해요. 저는 말도 잘못하고. 이것저것 선생님이 설명해 주셔야 해요.”

 도형은 재임이 약간 흥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너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잖아. 신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다고 해?”     

 “외계인 얘기하면 모든 사람이 비웃을 거예요. 그냥 우연히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하면 되겠죠.”     

 “어느 방송국으로 가야 하지? KBS? SBS? MBC? 아니면 종편? 아니면 이리로 오라고 할까? 여기서 기자회견을 하지 뭐”     

 “여기요? 병원으로요? 병원에서 기자회견을요? 여긴 장소가 너무 좁아요.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려올 텐데요?.”     

 “우선 방송국에 전화부터 해 보자. 현수막을 단 사람이 우리라고.”     

 “지금 당장이요?”

 재임은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너무 빠른가? 그래 맞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조금 정리하고 며칠 후에 연락하도록 하자.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지켜보고.”     

 “ 그게 좋겠어요.”

 재임은 도형의 얼굴을 보며 작은 미소를 보였다.     

 3일 후 도형과 재임은 비밀리에 방송국 사람들과 접촉하여 KBS 저녁 뉴스에 나가기로 약속을 정했다. 뉴스에 나가서 할 이야기를 도형과 재임은 밤을 새워 의논하였다.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믿을까요?”

 재임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믿지 못하겠지. 뭔가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줘야겠지. 그냥 말로만 해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도형은 어떤 증거를 보여 줘야 할지 생각했다.     

 “동물들을 준비해 달라고 할까요?”

 재임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자리에서 동물들이 죽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때 신과 접속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면 진짜 우리 사기꾼 되는 거야.”

 도형은 생각이 바뀌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어차피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끝까지 가보는 거지 뭐. 우리가 사기꾼으로 몰릴 수는 없지. 네가 신과 접속이 이루어진 다음에 동물을 준비시켜 달라고 해 볼까? 또 동물단체 같은 데서 난리 치는 거 아냐?”     

“전 인류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마당에 지금 그게 문제인가요?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문제가 있어요. 내가 TV에 나가면 정신병원에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이 날 알아볼 거예요. 그러면 바로 날 잡으러 달려 올 거예요. 내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사람이 알려지면 우리 이야기는 신빙성을 잃어버릴 거예요.”     

 재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바닥을 이마에 대었다.     

 “너의 얼굴은 나가지 않게 하자.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하든지 아니면 커튼 뒤에서 이야기하든지.”     

 “뭐가 좋을까요?”     

 “방송국에다 부탁해보자. 너의 얼굴은 TV에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재임과 도형은 동시에 입술을 깨물었다.     

 앵커가 왼쪽에 앉아 있고 도형과 재임은 무대 가운데 만들어 놓은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재임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해 주기로 방송국과 합의하였다.


뉴스 진행자가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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