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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3. 2024

신의 고백(11화)

방송이 끝난 후 도형과 재임은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형의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재임은 도형이 항상 불면증에 시달리며 고통받던 보조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도형은 깊은 잠에 빠진 재임이 부러웠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신을 움직일 수 없도록 강하게 결박하는 꿈을 꾼 후 재임은 눈을 떴다.     

“푹 잤어? 그런데 왜 그렇게 땀을 흘려?”     

“좋지 않은 꿈을 꾸었어요.”     

방송국에서의 일들 역시 재임에게 꿈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찾아온 불안과 공포에 재임은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 되었어요? 세상이 난리 났겠죠?”

 재임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많이 잤나요?”

 “한 열 시간 정도.”     

 “어떻게 됐어요?”

 재임은 조급하게 물었다.     

 “그냥, 아직은 잘 모르겠어.”

 “어떤데요?” 재임이 재촉했다.     

 “몰라 모든 방송에서는 계속 우리가 한 이야기에 대하여 방송을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우리를 사기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리 다 꾸며 놓은 속임수로 세상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그래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말이 안 돼요. 만 명이나 죽을 것을 우리가 미리 알려줬잖아요.

 실제로 정확히 만 명이 죽었고요. 그것들을 어떻게 설명하고요? 우리 앞에 있었던 동물들도 순식간에 죽어 버렸잖아요. 그것이 다 사기라는 게예요”     

 도형은 재임이 약간 흥분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형은 재임의 눈을 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다 믿는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 지금은 차분하게 지켜봐야 할 때야.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어.

 우리처럼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자신들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세상이 곧 사라진다는데 그걸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잖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방송들도 마찬가지고. 유명한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이 모여서 이 현상들을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아.

 지금 이 병원 앞에도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로 가득 차 있어. 경찰뿐만 아니라 군인들까지 와서 병원을 지키고 있어. 우리는 이곳에 완전히 갇혀 버린 거라고.”

 도형의 말을 듣고 재임은 약간 흥분이 가라앉았다.     

 “그렇군요. 그래도 이제 한시름 놨어요. 신의 계시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는데, 내가 할 일은 이제 끝났으니.

 사람들이 믿든, 안 믿던 난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애당초 이런 일을 믿게 만드는 일이 무리였죠?”     

 “그냥 없던 일로 할까? 그냥 재임이 네가 정신에 문제가 있어서 환청을 들었다고 할까? 일이 너무 커져 버렸어. 아니 원래 큰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재임은 이 이야기를 하고 순간 또다시 죽음의 충동을 느꼈다.     

 “지금 전 세계 언론들이 우리를 취재하려고 난리가 났을 거야.”     

 “저 때문에 선생님까지 불편하게 되었네요. 정말 죄송해요.” 재임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긴 그게 너의 잘못은 아니니까. 어찌 되었든 경찰들과 군인들이 이 병원을 지켜주기로 했고, 지금 기자들하고 일반시민들까지 병원에 와서 난리를 치고 있나 봐.

 이제 전 세계 기자들과 방송국에서 더 많이 몰려들겠지. 너의 컨디션 좀 좋아지면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다시 한번 해야 할 거야.”     

 “무서워요.”

 재임은 도형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마!. 너도 죽음이 두렵거나, 오래 살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잖아.

 나도 아내가 죽으면 같이 죽어 버릴 생각이었거든. 나 혼자 잘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곧 죽을 걸 아는 사람들이 무서울 게 뭐가 있어? 그냥 편안하게 지켜보자.”

 도형은 재임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잡고 있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그래도 무서워요. 뭐가 무서운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하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하자.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도형은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재임은 알아채지 못했다.

 도형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깨어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이대로 떠나보내는 것이 좋을까?’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3년밖에 살지 못할 텐데, 깨어나서 또 죽음을 기다리고 맞이할 필요가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형은 사발면 하나를 들고 재임을 처음 발견한 병원 휴게실로 갔다.

 그곳에서 TV를 보고 있던 간병인은 도형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도형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TV에서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네. 도대체 사람들이 앞으로 3년밖에 못 산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선생님도 TV에 같이 나오던데? 알기 쉽게 설명 좀 해봐요. 도대체 뭔 소릴 하는 거야?

 병원 밖에도 난리가 났던걸. 경찰들도 몰려오고 방송국에서도 오고 외국 사람들도 엄청 많이 있던데.

 경찰들이 병원 안으로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느라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나 봐.”     

 간병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도형은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교수님은 좀 어때요? 위독하시다고 하더니?”     

 “고비는 넘긴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래봐야, 한두 달이라는 것 같아.

 딴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 말 좀 해봐요. 어떤 사람들은 이 선생을 사기꾼이라고 하기도 한다니까.”     

 “아주머니는 신을 믿으세요?”     

 “뜬금없이 또 무슨 소리야? 난 부처님을 믿지.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 안 그러면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 그 정도는 믿지. 그건 왜 물어?”     

 “지난번에 왔던 그 청년 아시죠? 제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아주머니가 사기꾼이라고 했던 사람이요.”     

 “알지, 그 청년. 그 청년이 어떻게 됐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대요. 아니 하나님이라기보다 어떤 신이죠.

 그런데 그 신이 3년 뒤에 세상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대요. 지금부터 딱 3년 동안만 살려주기로. 그게 다예요.

 그걸 그 청년에게 말했고, 그 청년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거구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신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있으니까 미리 우리나라에서 만 명의 사람을 먼저 데리고 갔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사람들이 갑자기 죽은 거예요. 우리는 그걸 미리 알리는 벽보를 붙이고 다녔었거든요. 어렵지 않으시죠?”     

 “정말 그 사람 말대로, 아니 하나님이 말한 것처럼 만 명의 사람이 갑자기 죽었어? 정말 신이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거야?”     

 “ 네 맞아요. 그래서 뉴스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우연히 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갑자기 죽을 수는 없잖아?”     

 “그렇죠.”     

 그럼, 사실인가 보네.. 아이고, 큰일났네. 우리 작은애는 3년 후에 시집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다 소용없는 짓이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 하나님인가 하는 분은 왜 사람들을 다 데려간다는 거야?”     

 “모르겠어요. 때가 되었다고만 이야기 하나 봐요. 세상 모든 생명을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 버린다네요.”     

 “말릴 수는 없어? 기독교인들이 많으니까 그들이 매일 기도드리면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그 하나님이 아니라니까요. 그 이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신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청년 한 사람뿐이니 다시 얘기를 좀 들어봐야지요. 이제 다 이해되셨지요? 이제 저도 방에 가서 좀 누워야겠어요. 저도 잠을 못 자서.”     

 “아직도 난 뭔 소린지 모르겠어. 하여간 빨리 가서 좀 쉬어요.”

도형은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간병인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았다.     

도형의 아내가 있는 병원의 모든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도형의 부탁으로 도형의 아내 옆에 누워있던 교수와 간병인만 남고,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놓고 병원은 세상과 격리되었다.     

 재임도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도형이 있는 병실에서 가장 가까운 1인용 병실 한 곳이 재임의 새로운 거처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도형과 재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였지만, 보호보다는 감금에 더 가깝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도형은 재임이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병실 문 앞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두 명이 서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 중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도형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도형의 생각과는 달리 친절한 태도로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도형은 병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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