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무하 Oct 23. 2024

신의 고백(13화)

도형은 아내에게로 돌아왔다.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간병인은 보조 침대에서 졸다가 일어나며 도형을 보며 얘기했다.     

“왜 집에 안 가셨어요?”     

“밖에 왔다 갔다 하는 횟수를 최소로 줄이래. 나갔다가 들어오는 일이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더라고. 자꾸 왔다 갔다 하면 병원에서 상주할 수 있는 다른 간병인으로 바꾸겠다고 하네.”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꽤 높아 보이는 사람인 거 같던데?”     

“병원 사람이에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닌 것 같았어. 알게 뭐람.”     

“그러면 여기서 고생하시지 말고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지 않아요? 여기서 갇혀서 계속 지내실 수는 없잖아요?”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교수님을 여기 있는데, 그냥 나 몰라라 하고 가는 것이 쉽지 않네. 교수님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돌봐드리고 싶어서.”     

“집에는 연락하셨어요?”     

“연락은 했지. 전화 통화는 자주 하고 있어. 오늘 아침에 필요한 것을 가져오느라 집에 잠깐 갔다 왔는데 병원 밖은 난리도 아니더라구. 병원 근처에 사람들로 가득 찼어. 데모하는 거 같은 사람들도 모여있고 KBS나 SBS 같은 방송국 차들도 많고 외국 사람들도 엄청 많이 와 있던데.

경찰들도 수천 명은 되는 거 같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요? 놀랄만한 이야기 하나 더 해드려요?”     

“뭔데?”     

“조금 이따 대통령이 이곳에 오신대요.”     

“뭐 대통령이?

간병인은 도형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 두 시간 정도 후에요.”

도형은 비밀이라는 듯이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뭔가 큰일이 나긴 났나 보네.

나도 대통령 얼굴 볼 수 있을까?”     

도형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상황에 대통령 얼굴을 보고 싶으세요?”     

“보고 싶지.”     

“글쎄요. 잘하면 보실 수도 있겠죠.”     

“그럼 좋겠다. 이 병원 안에서도 이미 경찰들로 가득 차서,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어졌어.”     

“그냥 편하게 지내세요. 뭐 죄지은 것도 없는데 경찰들을 무서워할 것 없잖아요. 그냥 군대 보낸 아들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하여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너무 정신이 없어.”     

“그러게요.”

도형은 보조 침대에 앉으며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이 사람 깨어날 수 있을까요?”

도형은 목소리에 힘을 빼고 간병인에게 물었다. 아니 자기 자신에게도 동시에 물었다.     

“당연히 깨어날 수 있지. 아직 젊은데. 걱정하지 마시고 글이나 열심히 쓰세요.”     

“지금 제가 글 쓰는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지구의 종말이 가까이 온 시국에 글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런가? 그럼, 글은 포기하려고?”     

“완성하고 싶기는 하죠. 이 세상 사람 아무도 제 글을 읽지 못한다고 해도 완성은 시키고 싶어요.”     

“그럼, 아무 생각 말고 써봐. 최소한 나라도 읽어줄 테니까. 하긴 나는 무식해서 무슨 얘기를 쓴 건지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뭔 말씀이에요. 그래요, 아주머니가 제 첫 독자가 되게 해드릴게요.”

“와 영광이군. 그럼 빨리 쓰시게나.”     

“알았어요. 이제 대통령 만날 준비 좀 해야겠어요.”     

“아 이 선생도 대통령을 직접 만날 거야? 그 청년이 만나는 게 아니고?”     

“재임이가 지금 마음이 약해져서 저를 많이 의지하는 거 같아요. 누구를 만나든지 저와 같이 만나고 싶다고 하네요. 저도 부담이 되긴 하지만 지금 재임이를 도와줄 사람이 저밖에는 없는 것 같아서요.”     

“그래 저 청년도 엄청나게 약해 보이더구먼. 그래 도와줘야지.”

간병인은 누워있는 교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이 많이 드셨나 봐요?”     

“그런 것 같아. 지금은 거의 내 가족 같은 느낌. 그냥 우리 언니 같다는 생각이야. 평상시라면 나랑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유식한 교수 양반이지만, 지금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 이 선생도 마찬가지야. 우리 네 사람이 이 병실에서 같이 지낸 지도 벌써 몇 달 되었잖아. 정이 들 때도 됐지.”     

“맞아요. 이 교수님도 저에게 중요한 사람처럼 여겨져요. 말 한마디 해 보지 않은 사이지만요.”     

“그래 맞아.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니 그런 생각이 더 드네.”

간병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형도 같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도형의 전화기 벨이 다시 울렸다.     

“네.”     

“알겠습니다.”

도형은 병실을 조용히 나가 재임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재임은 도형을 보며 물었다.     

“오셨대요?”

“어, 원장실에 계신다네.”     

“지금 가요?”

“그래, 같이 가자.”     

“원장실이 몇 층이죠?”     

“4층.”     

도형과 재임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건장한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원장실 문 앞에 섰다.

선글라스를 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방문을 두드림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도형과 재임이 들어가자, 대통령은 앉아 있다 반가운 표정을 하면서 도형과 재임에게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도형은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 자신도 모르게 형식적인 말이 나와버렸다.     

“제가 더 영광이죠. 신 앞에서 대통령이 대수겠어요.”     

대통령은 도형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서민적인 모습이었다. 도형은 긴장된 마음이 좀 풀어지는 듯했으나 재임은 아직도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우리 앉아서 얘기할까요?”     

대통령은 곁에 있던 비서 같은 사람들과 선글라스를 쓴 사람에게 눈짓하니, 모두 밖으로 나갔다.

넓은 원장실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대통령은 급한 듯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전 세계 지도자들과 화상회의를 했어요.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에요. 그래서 내가 정확하게 확인해 보겠다고 약속하고 이리로 바로 왔어요. 너무 늦은 시각이라 내일 올까 하다가 내일까지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희는 밤낮이 없는 사람들이라. 그렇지?”

 도형이 재임을 보며 얘기했다.     

“네. 맞아요.” 재임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혹시 나 때문에 긴장하셨다면 그러지 마세요. 대통령도 사람이에요. 지금은 나보다 서재임 씨가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사실 긴장한 건 저예요.”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면 재임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재임은 긴장이 좀 풀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제가 뭘 해야 하죠?”     

“정말 신이 살아 계신 지, 서재임 씨가 말한 내용이 다 사실인지 내가 확신을 갖게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나의 의견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내가 서재임 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확신이 들면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각 나라에서는 내 말에 따라 정책을 세워야 하니까요.”

대통령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어차피 믿지 않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믿지 않을 텐데요?”

도형이 대통령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만 현재 일어난 일로는 좀 부족해요.”     

“그럼, 사람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믿을까요?”

재임은 약간 기분이 상한 사람처럼 말했지만, 진짜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도형이 떨고 있는 재임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신에게 물어보자.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 어떤 방법으로 믿게 할 수 있을지. 신은 방법을 알고 계실 거야.”     

대통령은 재임의 눈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가능할까요?”     

재임이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도형이 끼어들었다.     

“아마 신께서도 지금까지의 일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믿지 않을 거라 알고 계실 거야. 뭔가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사람을 죽이는 일 말고.”     

“신과는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대통령이 도형을 보며 물었다.     

“저야 언제든지 신을 부를 수 있지만, 항상 답이 들렸던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는 바로 답을 듣지 못한 때가 더 많아요.”     

“너의 소리를 듣지 못해서일까?”

도형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죠.”

재임은 대답을 하고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지금 신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요?”

대통령이 재임에게 물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께서도 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장소에 계신다면 우리 이야기를 듣고 계시겠지만 다른 공간에 계실 수도 있고.”     

“신이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대통령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질문을 했다.     

“신도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고, 지금 우리 곁에 있어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재임 씨가 보내는 신호도 지금 이곳에 계셔야 답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대통령이 재임에게 물었다.     

“그냥 저의 추측일 뿐이죠. 확실한 것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신은 주로 너의 곁에 계시지 않을까? 신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뭐 신이 쉬시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우리는 신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것이 없네. 어쨌든 내 생각에는 지금 이곳에 꼭 있을 것 같은데?”

도형이 확신한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확인해 줄 수 없어요?”

대통령은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재임에게 제안했다.     

“아, 지금 당장이요?”     

“네,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해볼게요.”

재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가 일인용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대통령과 도형은 긴장된 표정으로 재임을 바라보았다.

재임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도형은 신과 대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임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도형은 재임의 땀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꼼작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재임은 눈을 떴다.     

대통령과 도형은 원장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는 십 분 정도의 시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끝났어?”

도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고생했다.”     

“그래 무슨 얘기를 했어? 물이라도 한 잔 줄까?”

도형이 기운이 다 빠져버린 재임에게 말했다.     

“네, 물 한 잔 마실게요.”

도형은 원장실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아 재임에게 주었다.     

“자, 시원하게 한잔 마셔.”     

재임은 물 한 잔을 모두 다 비웠다.     

대통령과 도형은 재임의 입만 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빨리 이야기해 드릴게요.”

재임은 두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통령은 재임의 이야기를 녹음하거나, 기록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허락을 받은 뒤 어딘가에 전화했다. 1분 정도 지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대통령이 말했다.     

문은 열고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진하지 않은 색의 청바지에 흰색 셔츠에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를 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키가 크고, 마른 여자가 들어왔다.     

“이분은 저를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제가 제일 신임하는 분이기도 하고.”     

도형은 여자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린제이 여입니다. 한국 이름은 여희주입니다.”

린제이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도형과 재임에게 인사를 했다.     

영어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아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이거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일 것이라고 도형은 생각했다.     

여자는 노트북과 처음 보는 정사각형 모양의 소형 기계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제 말씀하셔도 될까?”

대통령은 여자에게 물었다.     

“네. 시작하셔도 됩니다.”     

여자는 노트북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재임에게 눈을 돌렸다.     

“궁금한 내용은 린제이 여 씨가 보충 질문을 드릴 수도 있어요. 괜찮겠지요?”

대통령이 재임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재임은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신께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미리 경고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릴게요.     

지금 신이 경고한 지구 생명체의 마지막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도래한 것뿐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 마지막 시간을 신이 정한 것이 아니고, 그냥 신께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 합니다. 

내가 신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쯤 이미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신과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신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어, 지구 생명체의 종말 시점이 3년 연장된 것입니다.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보는 일은 너무도 끔찍하셨다고 합니다. 

인류가 이룬 문명은 찬란하고 거룩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죄악들이 넘쳐났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힘 있는 자들의 욕망 때문에 벌레처럼 죽어간 이들이 너무너무 많았다고.

의미 없는 전쟁에 나가 처참하게 죽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인류는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동안 인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반성.      

인간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평화스럽게 지내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마지막 인류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동안 지구상에서 벌어진 인간들의 죄악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려주실 수 있다고 하셨나요? 

현재까지 역사책에 기록된 일들 이외의 일들까지도요?”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신은 그동안 인간들에게 많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수십억 년 동안 침묵만 지켜오셨으니까요.”     

“어떤 방법으로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진짜 신을 믿게 하실 거래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절대 믿지 않을 텐데요.” 

린제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신께서도 당연히 그것도 알고 계시지요. 하지만 신은 지구의 생명체, 특히 인간의 삶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지구의 생명체를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 에너지를 회수해 가는 일뿐입니다.”     

“과거에도 신께서 인간의 생명을 회수해 가신 적이 있었어?”

도형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아까 이야기 한 대로, 신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신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사람들만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이루어진 공간과 시간에 모두 계셨던 것은 아니라는 거죠. 

단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죽은 후 신과 하나가 된 후, 그 사람들을 통해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게 될 뿐이라고요.

신이 계시던 장소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있으면, 불쌍하게 생각하여 생명을 회수해 가진 적은 있다고 하셨어요.”     

“신께서도 감정을 가지고 계신가요? 불쌍하게 여기는 것도 감정인데…. 감정은 뇌에서 만들어 내는 것인데, 신은 뇌가 없지 않을까요?”     

여자가 약간 격양된 말투로 물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그럼 모든 사람에게 신의 존재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릴 방법은요? 그걸 알려주셨나요?”

이번에는 대통령이 물었다.     

“이번에도 정해진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지?”

도형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것은 인간들끼리 정하라고 하셨어요. 어떤 방법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꺼이 해주겠다고요. 하지만 신께서 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나를 통해 말하는 것과 생명 에너지를 회수하는 일뿐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군.”

대통령이 자신의 이마를 만지며 걱정하듯 이야기했다.     

“우리가 여기서 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과 의논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도형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뭔가 인류를 대표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많은 나라들과 수많은 학자가 서로 자신의 의견들을 각각 제시하면 세상이 너무 혼란스러워질 것 같아요. 지금도 수많은 사람과 각 나라 방송국에서 서로 서재임 씨를 면담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 말이야.” 

대통령은 린제이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또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

린제이 여가 또박또박한 말투로 재임에게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신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요. 

신 자신도 아주 아주 오래전에 우주 어딘가에서 외롭게 태어난 존재. 

더 커지고 강해지기 위해서 지구에 자신의 일부를 뿌려 생명을 잉태하게 만든 존재, 지구의 생명 에너지를 공급한 근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이야기요.

신께서도 자신의 의식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십니다.

자신을 창조한 더 큰 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다 인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세요.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모두 인간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했어요. 

인간이 죽으면 모든 지식은 신에게 전달되니까요.     

아쉬운 것은, 인간의 본성이 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여하튼, 신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실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주겠다는 이야기네요?”

린제이가 말했다.     

재임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떡였다.     

“그럼,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하겠네요.”

 대통령이 도형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준비해 보라고 해보세요.”

도형은 다시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미국이요?”     

“우리나라에서 준비하는 것보다는 미국에서 주관하는 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 신뢰를 주지 않을까요?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도 많긴 하지만 미국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테니.”

도형이 대통령과 린제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대통령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정부에서 이미 많은 사람을 보냈어요.

아니 미국뿐 아니라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모두 재임 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아우성들이에요. 

우리 정부도 너무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솔직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나도 오늘 서재임 씨를 보기 전까지는 신의 존재를 믿지 못했어요. 

서재임 씨를 오늘 보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아요. 

만 명이라는 사람이 동시에 죽는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재임은 대통령을 향해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 표시를 하였다.     

“앞으로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요구사항이나 우리 정부의 의견은 여기 린제이 여 씨를 통해 두 분께 전달할 거예요. 

린제이 여 씨도 당분간 이 병원에 상주할 거예요. 

물론 여러 사람이 이미 이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하는 중이고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을 여기 이도형 선생님이 도와주셨어요.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항상 이도형 선생님과 의논하고 결정하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든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선생님과 ‘함께’가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재임의 생각은 단호했다. 그만큼 재임은 도형을 신뢰하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 건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하겠습니다.”

대통령은 재임을 보며 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도형 씨 말대로 미국이나 영국에게 준비를 해 보라고 제안해 보는 것이 좋겠어요.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신의 말과 존재를 믿을 수 있도록 확신한 방법을 보여 줘야 하겠네요.”

린제이는 대통령에게 허락을 구한다는 듯이 대통령의 표정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준비해 주세요. 뭔가 결정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늦은 밤에 불쑥 찾아와 불편하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대통령은 재임과 도형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