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J의 결혼 데드라인
나는 소위 말하는 '파워 J형' 인간이다. 통제형, 계획형이라고도 하는 이 성향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때문에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항상 계획을 세워 대비하고자 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갈지, 무얼 먹을지, 어떻게 가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까지 사전에 미리 알아두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일을 할 때도 하루 첫 일과는 그날 할 일들을 30분 단위로 계획하는 일이었다. 나는 쉬는 날마저 집안일들을 계획한 순서대로 처리하곤 했다.
피곤해 보이는 성격이지만 한 가지 큰 장점이 있었다. 바로 원하는 목표를 빠르게 이루는데 최적화된 성격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준비한 시험에서 낙방하거나 자격증 취득에 실패한 경험이 없는 이유도 목표까지 철저한 계획 하에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다가 누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내 머릿속은 계획이 틀어질까 봐 대화에 집중 못하고 온 신경이 이미 딴 곳에 가있다. 여행을 가서도 계획에 얽매이는 바람에 여행 중 마주하게 되는 우연의 기회들을 제대로 즐기질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성격에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해 '계획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 계획 없이 살아보기를 실천하는 등 고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오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 다짐은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 바로 무너져 버렸다. 인생에 닥친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J의 성격이 또다시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워 J의 결혼 계획이 시작된 것이다.
결혼, 몇 살까진 해야 할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라는 데드라인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때까지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트를 펼쳐 5년간 짧은 계획을 세워 보기로 한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적는다. 그리고 옆에 내 나이까지 적는다.
2021년 (31살)
2022년 (32살)
2023년 (33살)
2024년 (34살)
2025년 (35살)
결혼은 아무 때나 해도 괜찮겠지만 나에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조건이 있었다.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을 언제까지는 해야 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여자의 난소는 30세부터 노화가 시작되어, 만 35세 이상부터는 빼도 박도 못하는 노산에 속한다. 노산이 된다면 임신 확률도 떨어지지만 무엇보다 산모 몸에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 가장 염려스럽다. 가능하다면 노산만큼은 피하고 싶다. 35살 옆에 '노산'이라 쓰고 지운다. 35살을 넘겨선 안될 것 같다.
2021년_ (31살)
2022년 _(32살)
2023년_ (33살)
2024년_ (34살)
2025년 _(35살) 노산
그럼 언제까지 출산을 해야 할까?
산모가 아이를 품는 기간은 총 10개월이다. 만약 34살 1-2월에 임신을 한다면 같은 해 11- 12월에 아이를 출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산을 피하면서 출산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바로 34살인 것이다. 34살 옆에 '임신& 출산'이라 적는다.
2021년_ (31살)
2022년 _(32살)
2023년_ (33살)
2024년_ (34살) - 임신& 출산
2025년 _(35살) 노산
그럼, 드디어 나왔다.
내가 결혼해야 할 나이는 적어도 '31살, 32살, 33살!'
이 3년 안에 나는 결혼할 상대를 만나 결혼까지 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2년 8개월 만에 평생의 짝을 찾아서 결혼까지 하고, 바로 임신 시도까지 한다면 계획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음..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
결혼이 계획으로 될 거였으면 '하늘이 맺어주신 인연'이라 말하지도 않았겠지.
멍청한 계획이었다. 운명의 상대가 몇 년 사이에 뿅 하고 나타나, 아이도 시도하자마자 생기는 행운들이 연속으로 있어야 한다. 자격증처럼 계획을 세워 노력한다고 될 일들이 아니다. 그래, 그런 일이면 다들 결혼하고도 남았겠지.
이런 계획을 세운다고 몇 시간째 열을 올리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J형은 미래가 불안할수록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려 한다는 것을 잠시 까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