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어려워진 이유
'3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학창 시절 유행하던 급훈이었다. 이것의 남학교 버전은 ‘3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로 기억된다. 여중, 여고를 나왔던 나는 꼭 빠지지 않고 위의 급훈을 걸어 둔 반들을 볼 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공부를 잘해야 너의 미래가 바뀐다는 등의 내용이 급훈으로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줄곧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결혼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꽤 부린 적 없이 공부도 열심히, 대학 생활도 열심히, 밥벌이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해왔건만. 이상하다, 결혼이 어렵다. 분명 저 순서대로만 살면 되는 게 아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와 비교해 바뀐 것이 하나가 있다. 바로 결혼 조건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만 해도 남녀가 결혼하기에 필요한 조건들은 딱 2가지씩 뿐이었다. 남자는 경제적 능력과 안정적 직업, 여자는 예쁜 외모와 좋은 대학이면 결혼하기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내가 수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보다 고작 7살 많던 사촌오빠가 '여자는 적당히 좋은 대학 나와서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는 말을 조언이라 씨부렸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결혼 조건이 6가지로 많아졌다. 먼저, 과거에 남녀가 서로에게 요구하던 결혼 조건을 이제 남녀 모두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남자도 여자도 '좋은 대학, 멋진 외모, 경제적 능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수록 결혼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좋은 성격'과 집안 능력'까지 갖춘다면 비로소 요즘 가장 핫한 '육각형 배우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도 육각형 배우자가 될 수 있을까?
사람 심리가 그렇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말하면서 정작 본인도 남들 좋다는 기준에 들고 싶다. 과연 나는 육각형 배우자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여섯 가지 항목에 점수를 매겨 열심히 점들을 연결해 본다. 그렇게 완성된 도형은 찌그러진 오각형. 아니 이걸 사각형이라 해야 하나? 도저히 육각형 모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아.. 이 점수만 좀만 더 높았더라면..' 지금 아쉬워 한들 뭐가 달라지겠냐만, 육각형 배우자가 되지 못 한 안타까운 마음은 쉽게 달래지지가 않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 육각형 배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내가 결혼을 못하고 있는 이유가 결혼 조건이 안 돼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울컥한다.
“아니, 결혼 조건이 2개에서 6개로 늘어났으면 준비할 시간도 3배는 더 줘야 하는 거 아냐? 결혼 시기는 그때보다 3-4년 늦어진 게 다면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나는 조건이 한참 부족하다 말한다. 그럼 대체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젠 뭘 더 하는 것도 지친다.
이제 보니 육각형 배우자는 ‘당신이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하는 선의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나는 결혼하기에 부족한 사람입니다'를 스스로 알게 하여 결혼을 포기하게끔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결혼이 어려워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만든 놈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