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1)
집에 갈 시간에 가까워졌다. 깍지 낀 손을 뒤집어 가슴팍 앞으로 쭈욱 뻗었다. 봄이어선지 몸이 한층 더 나른하다. 남은 일이 많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야근을 하든 밤을 새든 할 일은 새롭게 주어질 것이다. 남들 눈에 뜨이지 않도록 슬금슬금 퇴근할 준비를 했다.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는 퇴근 1분 전이라도 한창 업무를 보는 중인 것처럼 바빠 보여야 미덕이니까. 그러라지, 하면서 앞으로 웬만해서는 야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욱 강화시켰다.
팀장에게 말로 잔뜩 얻어맞은 이후로 나는 거의 야근을 하지 않았다. 오후 6시 5분 정도면 어김없이 회사 건물 밖에 있었다. 더 이상 나의 행불행과 자존감을 남의 손에 맡겨 두기 싫었다. 팀장이나 누구나 나를 고깝게 보든가 말든가 내 페이스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회사가 나를 일평생 책임져 줄 턱도 없고 여기서 승승장구 입신양명할 일도 없다. 나에게 주어진 몫만 하면 된다. 사내 위정자들에게 잘 보이려 빌빌 기면서 나 자신을 깎아먹을 필요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날마다 머리에 새겼다.
전처럼 오늘과 내일의 업무에 파묻혀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나는 저녁 메뉴에 대해 생각했다. 카레를 할까, 우동을 끓일까. 정시 퇴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늘어난 여가 시간을 활용해 나는 다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지극히 당연하게 누려야 할 내 시간을, 프로 노예를 자처하느라고 회사에 헌납하고 있었다. 어리석었던 과거다. 이제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무얼 먹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즐거운 루틴이다.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때와는 다르다. 요리는 자신을 돌보는 의식과 같다. 소박하게나마 음식을 담은 그릇에 짤그락짤그락 맞닿는 수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또 무얼 해 먹을까, 집에 재료가 뭐 있더라 한참 생각하는 중이었다. 메신저 알림이 떴다. 유진이었다.
'바빠?'
집 갈 시간인데 바쁘기는. '아니. 왜?' 답을 적어 보내려는데 타이핑을 다 마치기도 전에 유진이 채팅방에 메시지 하나를 더 띄웠다.
'할매 상태가 안 좋아.'
메시지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는 바람에 양 옆 팀원의 고개가 동시에 내 쪽을 향했다. 아랑곳않고 핸드폰을 챙겨 들어 잰걸음으로 사무실 출입문을 나섰다. 반 층 아래 층계참으로 뛰어내려가면서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급했다. 뚜, 뚜 신호가 두 번 울린 뒤에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 유진. 할머니 왜, 어떠신데?"
호흡을 정돈하면서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병원인데 많이 안 좋아. 아무래도 할매 오늘 못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아."
푹 꺼진 목소리로 유진이 말했다. 음정에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부디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민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나갔다. 한참 말을 잃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어때. 괜찮아?"
"나야 뭐.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너한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
"부모님은?"
"이제 막 급하게 올라오고 있어. 몇 시간 걸릴 걸. 너는 번거롭게 굳이 안 와도 돼. 그냥 나 혼자-"
"너 혼자는 뭔 개뿔. 시끄럽고 20분 있으면 퇴근이니까 바로 갈게. 기다려."
유진의 말을 가로채고 당장 가겠노라 못 박은 채 전화를 끊었다. 유진은 남을 쉽게 의지하는 법이 없다. 비슷한 성향이지만 나랑은 비교가 안 된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늘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는데 나로서는 그런 유진을 가만 보기 어렵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더.
유진은 유년기 무렵부터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무역 회사에 다녔던 유진 아버지는 국내외로 출장이 잦았고 어머니는 유진이 다섯 살 되던 해에 3교대 생산직 일을 시작해 딸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친조부모와 외조부 모두 세상을 뜬 상황에서 어린 유진을 온종일 살필 혈육은 외할머니 뿐이었다. 유진의 외할머니는 하나뿐인 손녀를 지극히 아꼈다. 유진 또한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천성이 무뚝뚝한 아이였지만 할머니에게만큼은 예외였다. 할머니는 유진이 유일하게 기대고 쉴 수 있는 언덕이자 그늘막이 되어 주는 사람이었다.
나도 유진의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중학생 때 유진의 집에 가면 할머니는 언제나 거실 소파에 앉아 돋보기 안경을 쓰고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현관에 들어서 할매 나 왔어, 하면서 신발을 벗느라 허리를 수그린 유진의 뒤에서 할머니 저도 왔어요, 인사를 건네면 할머니는 돋보기 안경을 벗어들고 늘 이렇게 화답해 주셨다.
"으메 우리 현서가 왔네이. 할미가 나면 하나 삶아 주끄나."
할머니가 항상 라면을 '나-면'으로 발음하는 것도, 끓여 주는 게 아니라 삶아 준다고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유진은 밖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런 할머니를 양 팔로 포옥 안고 애교를 부렸다. 할머니 앞에서만 유일하게 드러났던 유진의 여린 속살이었다.
"할매 뭐 하고 있었어. 밥은 먹었어?"
유진은 자신의 외할머니를 언제나 할매라 불렀다. 엄마 아빠를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면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할매 대신 할머니라 부르는 게 딱딱하게 느껴져서 싫다고 했다. 할머니를 부르는 유진의 모습을 본 같은 반 남자아이 하나가 버릇없어 보인다고 지적한 일도 있지만 유진은 개의치 않고 코웃음을 치며 저답게 받아쳤다. 별. 니 할매냐, 내 할매지. 신경 꺼.
유진의 부모님은 유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예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다. 유진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에 다시 터를 잡고 유자와 석류 등을 심은 농토를 일구게 된 것이다. 유진 어머니는 자기 엄마, 그러니까 유진 외할머니도 함께 모시고 귀향할 계획이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여기 열심히 신앙생활 중인 교회도 있고, 고향이지만 이제는 그쪽에 정 나눌 사람 하나 안 남았다면서.
말은 그랬어도 할머니의 속마음은 달랐을 것이다. 유진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할매가 입만 열면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했다. 고흥에 직접 가 보기 전부터 고흥이라는 곳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할머니는 자신 때문에 귀향을 포기하고 굳이 여기 남은 거라고 유진이 그랬다. 서울에서 홀로 대학에 다녀야 하는 손녀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어느 날은 이런 얘기도 해 보았다고 한다. 할매 고향 그립지 않어? 가고 싶음 이제 엄마아빠 있는 데로 가도 돼. 나 이제 어른이잖아. 혼자 뭐든 할 수 있어. 할머니가 남겼다는 대답은 이랬다. 되도 않은 소리 말어. 나가 널 혼자 두고 으딜 간대. 널 두고 으딜 가.
유진 외할머니는 동년배 어르신에 비해 꽤 정정하신 편이었다. 다니던 교회에서도 '열혈 박 권사님'으로 통했다. 10년 가까이 꼼짝 못하고 누워 지내는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처음 유진에게 할머니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병원에 달려갔을 때만 해도 유진 외할머니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이고 할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괜찮으세요 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그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익살을 보여 주셨다. 모올라, 시장 가는디 오두바이가 기냥 우짠다고 나를 뒤에서 파악 받아부럿시야. 하아이고메 아픈그.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시장 골목을 걷던 할머니 뒤에서 한눈을 팔던 오토바이가 백미러로 할머니의 왼팔을 치고 지나간 사고였다. 그것만 따지면 아주 큰 사고는 아니었는데, 놀란 할머니가 주저앉듯이 꽈당 넘어지는 바람에 엉덩이쪽 뼈가 부러져버린 게 문제였다. 하필 젊은 사람도 쉽게 안 붙는다는 뼈를 다치는 바람에 할머니는 오랫동안 거동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유진은 이 날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우는 유진을 보고 할머니가 유진의 손을 잡고 살살 매만지면서 말했다.
"아가, 울지 말어야. 울지 말어. 운다고 할미가 낫는 것도 아녀, 잉. 강하게 살어야제 강하게."
강하게 살아라. 할머니가 유진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여자 몸으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 난 힘이 남자에 못 미치면 마음이라도 더 강해야 한다. 나는 일평생을 나보다 센 주변에 휘둘리면서 살았으니, 너는 부디 강하게 독하게 잘 뿌리내려서 흔들리지 말고 네 뜻대로 줏대 있게 살아라. 유진은 할머니 말을 아주 잘 따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유진이 눈물 흘리는 모습은커녕 우는 소리 한 번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할머니의 상태는 빠르게 안 좋아졌다.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줄면서 기타 합병증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 오전 오후 예배까지 모두 참여할 정도로 열성적이던 양반이 교회 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이 생겼다. 결국 사고 이후 유진 외할머니는 단 한 번도 똑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나는 유진을 만나면 언제나 할머니 안부를 먼저 묻게 되었다. 병문안도 자주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유진 외할머니는 내 얼굴을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 할머니 현서 왔어요, 인사하는 내 얼굴을 누운 채 빠안 들여다보며 할머니는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나를 아요?"
나는 할머니와 유진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울어 버렸다.
장례 기간 동안 유진은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휴가까지 써 가며 유진과 함께 사흘 내리 영정 앞을 지켰다. 할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유진이 신경쓰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고 가셨는데도 울지 말고 강하게 살라는 전의 말씀을 유진은 유언처럼 받아들이고 사는 것 같았다. 문상객을 맞이하고 난 뒤 이따금 텅 비어버린 눈으로 허공에 초점을 붙박아 두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유진이 속으로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발인을 마친 뒤 유진 댁 어르신들은 이제 다 됐다고, 빨리 가서 쉬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젊은 사람이 와서 내내 고생해준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라면서. 유진도 나를 따라 떠밀려 자리를 떴다. 인사를 드린 뒤 나와 유진은 길 가다 발견한 순대국밥집에 들어갔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둘 다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않았다. 햇볕 아래 늘어진 두 그림자를 어색하게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이란 그저 '배고프다'였다. 떠난 사람은 이제 무엇도 축내지 않는 세계로 갔을지언정 남은 사람은 산다는 핑계로 무어든 탐해야 했다.
국밥 두 그릇을 시키고 나와 유진은 말 없이 마주 앉았다. 유진은 특별히 슬픈 표정을 하지도 일부러 쾌활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도 않았다. 평상시 유진의 모습처럼 덤덤한 얼굴로 있었다. 그게 더 슬펐다. 오 분 쯤 지나서 아주머니가 카트를 밀고 와 뚝배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나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이쪽을 쳐다보곤 말 없이 시선을 되돌리는 유진을 보고 내가 말했다.
"난 한 잔 할래."
유진은 팔짱을 낀 채 테이블에 기댔던 몸을 끌어당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종이컵에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시고는 숟가락을 집어 들고 김이 펄펄 나는 국밥을 휘적거리면서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는."
뚜껑을 까드득 돌려 소주를 잔에 따라내면서 나는 유진의 다음 말에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어떻게든 잘 살거야. 너도 잘 알잖아. 할매가 나 강하게 키웠으니까."
유진은 또 한 마디 덧붙였다.
"사람은 왜 죽을까."
대답 대신 유진의 말을 곰곰 되씹으면서 나는 소주 한 잔을 탁 털어 넘겼다. 역시 쓰다. 얼굴이 또 우그러들었다. 입맛이 아리다. 얼른 국물을 한 숟갈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유진이 여느 때처럼 내 행동을 지켜보다 물었다.
"맛있어?"
"이건 맛으로 먹는 거 아니라니까는. 또 묻네."
"그럼 나도 줘 봐."
숟가락을 든 손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유진을 쳐다봤다. 유진에게 술 마시는 사람이란 언제나 이해 가능한 범주 바깥에 자리한 존재였다. 눈에서 눈물 대신 유리 조각을 흘리는 사람, 바퀴벌레를 먹는 사람, 자기 신체를 훼손하는 사람, 고철을 섭취하고 사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은 이와 동일선상에 선 사람이었다. 유진의 갑작스런 요청이 마치 바퀴벌레를 한 번 맛보여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너 술 안 좋아하잖아. 왜 먹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래. 근데 이럴 때 먹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사람들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술 마시는 거 이해 못 하던 애가, 하다가 순간 엉뚱한 장소가 떠올랐다. 유진과 그 곳은 지금까지 전혀 섞이지 않는, 섞일 수 없던 키워드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갈 만한 데가 맞나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러지 말란 법도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유진에게 물었다.
"너 진심이야?"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말고, 내가 아는 데 같이 가자."
나와 유진은 국밥 한 그릇씩을 적당히 비웠다. 앉은 채 서로 눈을 한 번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나는 유진을 데리고 서화시장으로 향했다. 아무렴 유진에게 정말 바퀴벌레를 먹은 듯한 기분을 남겨 주기는 싫었다. 그러려면 달리 유진을 데려갈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