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할머니를 찾는 방문객 다수는 삼사십 대로 보이는 어른이었다. 이들은 백 할머니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오가는 말로 보아 사제지간 같았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모두 오랜 제자인 모양이었다. 제자들은 말쑥한 차림으로 과일 바구니 따위를 한아름 들고 찾아왔다. 아내, 남편, 자식을 데려와 문안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에게 백 할머니는 인간 교보재였다. 보경아 봐. 얼마나 덕망 있게 사셨으면 십 년 이십 년이 지났는데 제자가 저렇게 찾아와주고 그러니. 인품이 좋으면 결국 다 저렇게 돌아오는 거야. 주변에서 끊임없이 교훈거리를 찾아다 보경과 민혁을 일깨워 주려는 게 엄마의 습성이었다. 그런 보경 엄마도 눈썹 까진 아저씨가 할머니를 찾아올 때는 딴청을 피웠다. 예를 갖춰 오는 제자들과 전혀 딴판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왼쪽 눈썹 한가운데가 패여 있었다. 보경은 남자를 속으로 '눈썹 아저씨'라 칭했다. 특징이 많은 사람이었다. 깎다 만 듯한 수염과 후줄근한 등산복 상하의 차림, 퀭한 눈, 옆으로 퍼진 몸, 몸에 짙게 밴 담배 냄새. 눈썹 아저씨가 들어서면 속이 쓰릴 정도로 독한 담배 냄새가 병실에 가득 찼다. '담배 냄새 아저씨'와 '눈썹 아저씨'를 저울질하다 보경은 조금 더 중립적인 쪽을 택했다.
보경은 눈썹 아저씨에게 흥미가 있었다. 보경만이 감지하던 병실 안 위화감의 정체를 설명해줄 것만 같았다. 가만히 지켜보고 싶었지만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보경 엄마는 눈썹 아저씨가 병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오늘 날 좋다 한 바퀴 돌고 오자, 하면서 보경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아저씨는 한 눈에 보기에도 속 까만 사람이었다. 퀘퀘하고 음습한 늪 같았다. 보경은 낚싯대를 드리운 할머니를 떠올렸다. 흔들리지 않을 걸 알고도 던져넣은 바늘과 찌가 저 검은 물 속에 잠겨 있을 것이라고 보경은 확신했다. 눈썹 아저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할머니를 찾아왔다. 보경이 입원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평소에 커튼을 건드리지도 않는 백 할머니지만 아저씨가 올 때만큼은 달랐다. 사내를 창가 쪽 의자에 앉혀 두고 커튼을 둘렀다. 할머니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조곤조곤 말했다. 타이르는 듯도 하고 애원하는 듯도 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할머니가 찐득한 담배 냄새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보경은 걱정이 되었다. 짜증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왔다. 아니이, 그니까, 제발, 왜, 답답하게, 이제 그만 좀 같은 말에 힘이 실려 토막토막 들렸다. 엄마는 어김없이 보경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슬리퍼를 신고 엄마를 뒤따라 나가면서 보경은 남자가 하는 말을 또렷하게 들었다.
-나 진짜 그 돈 필요하다니까요 엄마. 좋게 말 하잖어. 응?
보경은 늘 걷던 병원 주변 산책로를 엄마와 함께 걸었다. 눈썹 아저씨의 인상을 지우려는 의중인지 관심 없는 얘기를 엄마는 열띠게 늘어놨다. 더 먹을 것도 남지 않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쭉쭉 빨면서 응급실 옆을 지날 때였다. 눈썹 아저씨가 회전문을 발로 밀면서 나왔다. 올 때와 달리 양 손이 무거웠다. 과일 바구니와 병음료 두 박스가 들렸다. 할머니가 선물 받은 물건을 전부 나누지 않고 조금씩 남겨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보경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아저씨는 건너편 흡연장에 멈춰 서서 짐을 내려놓고 담배를 물더니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렸다. 보경 엄마가 팔을 잡아챘다. 끌려가듯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보경의 고개는 아저씨를 향했다. 병실에 올라가 보니 채 빠지지 않은 담배 냄새가 은은히 떠돌았다. 할머니는 자리에 없었다. 저녁 시간에 가까워졌다. 보경 엄마는 집에 돌아갔다. 시간이 꽤 지나 슬슬 이런저런 걱정을 할 때쯤 할머니가 돌아왔다. 할머니는 말 없이 다시 침대에 앉았다. 창 밖을 내다봤다. 낚싯대도 바늘도 그날은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늪 같은 밤을 할머니는 가만히 들여다 볼 뿐이었다.
눈썹 아저씨는 다다음 날 늦은 오후에 다시 나타났다. 보경이 퇴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보경 엄마는 혼자 원무과에 갔다가 잠깐 가방 가지고 내려와 보라고 보경을 호출했다. 전화를 끊은 보경이 엄마 가방을 들고 병실 문을 나서려는 때였다. 아저씨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보경이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보경을 흘긋 내려다보고 말 없이 지나쳤다. 역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뒤이어 술 냄새까지 따라왔다. 보경은 백 할머니 쪽을 돌아봤다. 해사한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보경은 놓치지 않았다. 독성에 반응한 리트머스 종이처럼 할머니가 까매져 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커튼을 치는 모습까지 보고 보경은 엄마를 찾아 내려갔다. 생각보다 시간을 더 보내고 나서 병실로 돌아왔다. 할머니 자리에 여전히 커튼이 둘러져 있었다. 커튼 아래 다리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저씨는 가고 없었다. 이제 하루 남았네. 얼른 집 가고 싶지 않아, 하고 말을 거는 엄마에게 응 가고 싶지. 가서 내 침대에 눕고 싶어, 적당히 답하면서 보경은 커튼 너머 할머니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했다. 보경이 엄마와 잡담을 나누다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 틈에 할머니는 커튼을 다시 걷어 두었다. 엄마는 슬슬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종이백 하나를 벌려 놓고 주변에 늘어진 비닐봉지와 쇼핑백, 과일을 담아 온 플라스틱 용기를 쑤셔넣었다. 준비를 마쳐 놓고 보경 엄마는 할머니 쪽을 슬쩍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희 내일 가요 선생님.
보경 엄마는 백 할머니와 종종 짧은 대화를 나눴다. 보경이 보기에는 대화라기보다 일방적으로 엄마가 귀찮게 군 쪽에 가까웠다. 어쩜 그렇게 인상이 좋으세요, 제자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찾아와요, 언제까지 교직에 계셨어요, 우리 언니도 교산데 요새 애들 보통이 아니라데요. 조용한 양반이라 등쌀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했지만 백 할머니는 적당한 너스레로 여유 있게 받아냈다. 아이고 벌써. 어쩌나 이제 마지막이네, 할머니는 이번에도 호호 웃어 보였다. 보경은 왜인지 마음이 서걱거렸다.
엄마가 가고 나서 할머니는 보경을 불렀다. 보경의 몸 상태와 남은 방학 동안의 계획을 물었다. 짧은 대답을 듣고 나서 할머니가 말했다.
-그래. 재미나게 살아라. 나가서 또 아프지 말고.
할머니의 말 끝이 갈라졌다. 할머니는 목을 하흠 흐으음 힘들게 가다듬었다. 쿠욱, 하더니 고개를 돌려 종이컵에 묵은 가래를 뱉었다. 티슈를 뽑아 입을 닦고 한숨을 내쉬었다. 힘을 많이 주었는지 눈가에도 물이 맺혔다. 할머니가 보경을 잠시 말 없이 바라봤다. 보경도 할머니의 눈을 보았다. 희뿌연 눈동자. 탁 걸린 채 가래처럼 시원하게 뱉어 내지 못할 것들이 그 안에 혼탁하게 엉긴 것 같았다. 가족들하고 잘 지내고. 너희 엄마 좋은 분이야.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보경에게 먹을 것을 잔뜩 쥐어 줬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보경은 그 눈동자 속에 파묻힌 것 하나라도 긁어내 보고 싶었지만 뭐라 보챌 방도를 몰랐다. 할머니는 자신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산 어른이었다. 어른은 어른만의 생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돌아와 버렸다.
그날 보경은 입원 후 처음으로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일어나 보니 할머니는 자리에 없었다. 접히지 않은 매트리스 위로 담요가 네모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혼자 남은 병실에서 아침을 먹는데 병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보경 엄마는 전날 오겠노라 얘기했던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올라왔다. 딸의 손을 꼭 붙들고 우중충한 낯빛으로 병원을 서둘러 나섰다. 그 날 아침 백 할머니가 창고처럼 쓰이던 한 층 아래 공실에서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보경은 퇴원하고 한참 뒤에야 전해 들었다. 보경은 말을 전하는 엄마가 멋쩍을 정도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고서는 밥그릇을 마저 비우고 일어섰다. 화장실로 쪼르르 건너갔다.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면서 삭삭 솔질을 하다가 상체를 무너뜨렸다. 올각올각 치솟는 감정을 버티지 못했다. 하얀 거품이 입가부터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올 듯 말 듯한 재채기처럼 한참을 속 간지럽게 했던 위화감의 정체가 구슬져 떨어졌다. 알고 있었다. 자신은 할머니의 선택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