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민혁의 집에는 침대, 행거, 책상,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휑하고 축축했다. 침대 프레임은 공사장에 뒹구는 나무 빠레트와 비슷해 보였다. 매트리스 밖으로 두 뼘 정도 튀어나온 판넬 틈새에 먼지와 머리카락,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조립식 책상에는 노트와 두꺼운 책이 어지럽게 쌓였다. 책상에 손을 대자 상판이 좌우로 너울거렸다. 뒷면 X자 지지대 하나가 부러져 바닥에 닿아 있었다. 지팡이 빼앗긴 노인네처럼 달달 떠는 책상다리를 붙들어 진정시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플라스틱 용기 속 내용물이 언뜻 보기에도 죄 물크러진 상태였다. 문을 열었다 닫으니 공기 중에 방귀 같은 여운이 떠돌았다. 화장실은 듣던 대로 괴상했다. 성인 무릎 정도 되는 위치에 문이 달려 있었다. 오르내리려면 뜀틀 하나 넘는 수준으로 힘을 들여야 했다. 간이 계단 같은 구조물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 버거워 보였다. 일 보고 내려오다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한층 더 고된 일을 치러야 할 것 같았다.
문제의 베란다는 화장실과 마주 보고 있었다. 뚜껑 열린 통돌이 세탁기 한 대가 우측 가장자리에 덜렁 놓였는데 호스와 콘센트는 빠진 채였다. 그 뒤로 창이 벽면 높이 붙었다. 바깥으로 차량 바퀴와 사람 다리가 몇 번씩 오갔다. 고동색 철제 창틀 바깥을 빽빽히 두른 창살은 방범보다 격리용에 가까워 보였다. 창가에 붙은 암막커튼은 위아래 길이가 짧았다. 재단을 주방 가위로 직접 했는지 밑단이 들쑥날쑥했다. 누런 벽지 위로 군데군데 실밥이 거미줄처럼 늘어졌다. 안 좋은 의미에서 절묘한 조화였다.
보경은 베란다로 이어지는 통창을 열었다. 까가가각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냉기와 습기를 머금은 타일을 맨발로 밟으면서 보경은 미간을 좁혔다. 다 마신 소주병이 여남은 개 늘어져 있었다. 그 앞에 파란색 뚜껑이 달린 약통이 보였다. 집어들어 흔들어 보니 빈 것이었다. 내용물이 든 통은 수거해 간 모양이었다. 보경은 허리를 펴고 섰다. 이사올 때 새로 했다지만 한 계절만에 얼룩덜룩 떠 버린 벽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깔깔하고 눅눅한 기운이 살갗을 타고 올라왔다. 벽 앞에 선 민혁을 떠올렸다. 반지하에는 편리가 없었다. 사다리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바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오르기에 번거럽고 차갑고 버겁고 구불구불하여 자신을 내어 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굴 안에서 오그라졌을 가엾은 동생. 까만 공포를 지우려 겨우내 애썼을 동생을 생각했다.
민혁은 이사간 뒤 처음 맞는 겨울에 곰팡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창쪽 단열 문제인지 난방만 하면 베란다 벽에 결로가 생긴다고 했다. 그 위로 곰팡이가 끊임없이 세를 뻗치는 모양이었다. 투정 부리는 법이 없던 민혁의 볼멘소리를 보경은 그냥 받아 넘기지 않았다. 내가 가서 봐 줄까 했지만 누나가 보면 뭐 아냐면서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경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곧바로 곰팡이 제거제를 구해다 민혁 자취방 주소로 보냈다. 민혁은 효과 직빵이라고 만족했지만 한 번 뿌린 게 오래 가지는 못한다고 했다. 수시로 약을 뿌려 줘야 하는데 추위가 복병이라 했다. 약이 독해 뿌리고 나서 한 시간은 창을 열어 냄새를 빼야 하는데 그러면 베란다 문을 닫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방에 냉기가 들이닥치기 때문이었다. 곰팡이를 죽일 때마다 패딩을 입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한동안 버텨야 한다는 하나도 웃기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민혁은 칵칵 웃었다. 공부 다음으로 악에 받혀 하는 일이 곰팡이 박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약을 하도 뿌려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곰팡이가 싫어 나는. 바퀴벌레보다 싫어. 민혁은 전화로 이런 얘기를 종종 했다.
-내가 얼마 전에 깨달은 게 있어 누나.
-뭘.
-사실 내가 곰팡이인 거야.
-뭔 소리야.
-이거 한 번 뿌리고 나면 나도 막 뭔가 아픈 것 같단 말야. 이거 내가 곰팡이어서 그런 거 맞다니까.
-웃기고 앉았네 또.
-놈팡이나 곰팡이나. 셀프 박멸 하는 거지. 잘 된 거 아닐까. 나 같은 애들 싹 모아다가 약 뿌려갖고 없애버려야지 이거, 어, 우리나라 더 살기 좋아질 수 있잖아. 그찮아. 아 내가 그래서 곰팡이 이렇게 싫어하나. 이거 동족 혐온가.
민혁이 꼬부라진 목소리로 낄낄댔다. 보경은 동생의 자조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타박 대신 내일 놀러 갈까, 밥 같이 먹을까 딴 소리를 했다. 뭐하러어. 됐어. 여기까지 언제 와. 학교나 가. 나도 바빠. 가겠다 오지 마라 매번 하던 실랑이를 한 번 더 옥신각신 벌였다. 민혁은 가족이 저를 찾아 오는 것을 달갑잖아했다. 근처에 일부러 들러 봐야 제 방에는 절대 들이지 않았다. 남매의 부모나 보경이나 민혁의 자취방을 직접 본 일이 없었다. 민혁을 볼 수 있는 곳은 카페였다. 아니면 식당이었다. 보풀이 잔뜩 매달린 트레이닝복을 입고 역 앞으로 마중나와 휘적휘적 앞서 걸었다. 그렇게 얼굴 한 번 비추는 게 고작이었다. 정리 안 된 머리와 앞으로 쏟아진 어깨, 까맣게 꺼진 얼굴을 말 없이 보고 있으면 민혁은 꼭 보경을 웃기려고 들었다. 맥 빠진 몸짓에 더는 웃을 수도 없었다. 근황을 물으면 그냥, 뭐, 대충, 알아서, 잘 가운데 하나씩을 섞은 대답만 내놓았다. 일회용 컵에 꽂힌 빨대를 물고 쫍쫍거리면서 걱정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신은 별 문제 없이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고. 보경은 더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빌미를 만들어서라도 민혁을 자주 들여다 봐야만 했다. 민혁이 수화기 너머 했던 말이 오래 남았다. 아예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민혁의 몸을 그늘이 뒤덮고 있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