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아줌마의 불안증 투병기 9
결혼한 지 십수 년, 그동안 명절은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었다. 최소 일주일 전부터 소화불량이 생겼고, 시댁에 올라갈 때부터 기분이 다운되고 둘째 날 정도부터는 몸과 머리가 마비되었다.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고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으며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 지도 모르는 어른들의 말도 안 되는 덕담을 듣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나마 끝나고 시댁을 나설 때면 남편은 꼭 "수고했어"라고 해줬기에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명절에 올라가지 않기도 하고, 가더라도 어른들이 몇 분 오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음식의 양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버려질 음식들을 몇 시간이고 낑낑대면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어른들 틈에서 이야기를 재잘거리기를 원하던 남편의 바람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렇게 이번 추석이 왔다.
병원을 다닌 후 처음 맞은 명절이다. 오래전부터 불안은 항상 나를 휘감고 있었던 것을 깨달아가고 있고, 이전에 명절 때 느끼던 몸과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 역시 불안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가능한 나에게 관대해지고 주변의 자극에 신경을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의 외부적인 변수가 생겼다.
시아버지가 8월에 코로나에 걸리셔서, 벌초를 못했었다. 그런데 그 벌초를 추석 전날 하러 고향에 가신다는 거다. 그러니 따로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시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그래도 하루는 자고 와야 했지만, 전을 부치지도 송편을 만들지도 않는 명절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가짐을 갖기로 다짐하며, 시댁에 갔다.
저녁, 아침, 점심, 이렇게 꼬박 세끼를 함께 먹고 상을 차지고 설거지를 해야겠지만, 괜찮았다. 전을 몇 시간씩 안부쳐셔인지, 아니면 어른들에게 시달리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 이쁨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서인 지는 몰라도, 확실히 덜 힘들었다. 불안이 올라오려 할 때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할 일이 없을 때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구석방에 가서 잠을 잤다. 그렇게 예전에는 눈치 보고 긴장해서 하지 못할 일들을 했다. 그러니 머리가 굳어버리지 않았고, 밤에도 잠을 잤고, 아침에도 머리가 맑았다. 내가 인상을 쓰지 않아서 그런 지 몰라도 아니면 마음이 편해져서 인 지는 몰라도 남편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큰 일없이 내려왔다.
다음 명절도 이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차례를 안 지내는 것이 편하셨는지, 시어머니는 다음 추석 때도 벌초를 남자들끼리 다녀오고 차례 지내지 말자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고향 가셨다가 우리 집으로 오시라 했다. 고향과 시댁의 중간 지점에 우리 집이 있으니 말이다. 어른들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게 신경이 쓰일지는 몰라도, 사실 내가 시댁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은 편하다. 어쩌면 다음 추석엔 이번보다 조금은 더 편한 명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속단은 이를지 몰라도....
이렇게 불안 아줌마는 불안을 하나씩 달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