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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o Sep 30. 2022

10살 나영이에게 혼나다.

불안 아줌마의 불안증 투병기 11

지난 상담에서 어린 시절, 어른들이 엄마를 만나면 "아들을 낳아야지", "집에는 아들이 있어야 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언제부터인지 어느 때인지는 몰라도 딸 둘이었던 우리 집에 온 어른들은 항상 그런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에게 했고, 부모님들은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저 말을 후회하게끔 어떤 아들보다도 훌륭한 딸이 될 거야!'

그리고 나 스스로 잊을 까 봐 속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상담에서 다시금 살아났다. 무의식에 가라앉았던 것이 수면으로 올라온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씩 생각이 나면서, 점점 그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마치 거대한 뱀과 같은 연기처럼 나를 싸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10살 나영이는 나를 혼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잊지 말라는 데 잊었어! 그럴 줄 알았어! 잊지 말고 열심히 해서 성공을 했어야지! 지금 이렇게 아줌마로 살면서 현재에 만족하고 있을 때야? 너 훌륭한 딸 안 할 거야? 엄마를 위한 복수 안 할 거야!"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고 현재의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울감과 불안이 밀려왔고 또 숨을 쉴 수 없었다.


 


겨우 나를 달래며 잠들었고, 다음날이 되었다. 10살 나영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진 않았지만 패배감과 무능력함,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온몸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보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10살 나영이에게 마흔 넘은 나영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 같다고 말이다. 그 아이는 엄마를 곤란하게 하는 어른들이 싫었던 거다. 우리 엄마를 탐탁해하지 않았던 할머니와 친척들의 말투에 화가 났던 거다. 그래서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 어린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던 거다. 그 마음이 너무나 안쓰럽고 예뻤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영아,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구나? 마음이 너무 예쁘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을 도와주지 않아도 돼. 그리고 나도 아들 낳으라는 주변의 이야기 들었지만 지금 우리 딸이 잘 크는 거 보면 정말 행복하거든! 그 참견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그러니 너도 엄마가 마음 아플까 봐 화날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그때 그 다짐도 너무나 기특하지만, 네가 생각한 그런 성공은 사실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네가 그렇게 성공하지 않아도, 그걸 위해 애쓰지 않아도, 네가 건강하고 즐겁게 살면 엄마, 아빠도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그러니 더 이상 화내지 말고 걱정하지 마. 네 다짐을 잊어서 미안해. 이제 잊지 않을게. 네 다짐도 네 마음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가슴 한 구석에 박하사탕이 들어간 듯 시원해졌다. 그렇지만 나의 불안 요인이 이 대화를 통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막연한 성공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은 깎여나간 거 같다. 여전히 불안의 부스러기도 핵심도 남아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도 10살 나영이 너무 이쁘다. 상상 속에서라도 꽉! 안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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