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리 불행한 사람. 반면 행복은 저 멀리 유예하는 사람이다. 내일까지 할 일을 오늘 오전까지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납기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일상용품을 구태여 두 개씩 사는 사람. 그 중 한 개가 떨어지면 다시 하나를 채워놓는 사람이다. 늘 악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 그 시나리오 속에서도 최악의 신(scene)에 밑줄 그어 놓는 사람. 그래서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거만한 세상의 일에 부질없이 나의 욕망이 투영되는 것이 두려워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 뉴스를 보지 않으니 패배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조국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나는 지지한다. 그는 말이 너무 많았던 사람. 그러나 말과는 달랐던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욕망을 선언하지 않는다. 정직한 분노와도 연대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분노가 아니라 실패였다는 핑계로. 나는 무승부를 계속 쌓는 사람이다.
나는 스포일러를 애써 검색하는 사람. 경기의 박진감보다 결과에 먼저 안심하는 사람. 이를 위해 스포츠 기사만큼은 매일 읽는 사람이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았다. 이강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무승부보다 승리에 익숙한 만 18세의 천재를 보기 위해 굳이 행복을 유예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어제의 이강인은 처음으로 좋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망이 꼭 나를 향할 것 같아 나는 미리 불행해졌다. 나는 이제 욕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의 1패가 두려워 스포츠 뉴스도 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졸보가 되었나.
나는 마음으로 바깥의 풍경을 쌓던 사람. 잘 지내세요.라는 말 대신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적던 사람. 갑자기 대학을 다시 다니겠다던 봉주와 광안리에서 함께 밤을 새웠던 사람이었다. 아침이 왔을 때 나는 봉주에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도 걱정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던 사람. 그래서 촛불을 든 의인들과 같은 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박지성을 좋아했던 사람. 여론의 뭇매를 맞던 말년의 경기도 모두 챙겨 보았던 사람. 비천한 몸이 되고도 한계를 전부 쏟아내는 그를 닮고 싶다고 자기소개를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다시 하루를 쌓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침대에 누워 지나간 추억 대신 서하와 별과 내일을 세는 사람. 국이 없으면 그게 밥이가 호탕하게 말하던 사람. 정직한 분노가 넘실대는 쿠데타를 꿈꾸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바다와 친구를 좋아하던 사람. 지치지 않는 체력과 헌신을 동경하던 사람. 저 멀리 있는 행복을 끌어다 유리와 함께 강원도로 향하던 사람이 다시 되고 싶다.
나는,
나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