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20년을 살다 왔지만 지금도 부산으로 휴가를 간다. 그 애착이 탐탁잖은 유리를 데리고 소싯적부터 먹던 손칼국수 집이며 친구들과 호연지기를 기르던 바닷가로 가 낡은 추억을 늘어놓는 즐거움이 있다. 지금 내게 소원이 있다면 서하와 함께 단둘이 그곳으로 가 청초한 추억을 걸어놓고 오는 것이다.
부산이 지역으로서 갖는 매력이 있다면 도시와 바다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도시와 강은 인류의 문명에서 흔한 조합이었지만, 도시와 바다의 조합은 그보다 희소했다. 특히, 나의 비루한 해외 경험으로는, 거대도시와 해변의 공존, 그러니까 지하철을 타고 해수욕을 나가는 도시는 부산이 유일했다. (아니면 말고.)
지금 해운대 앞으로는 서울 63빌딩을 훌쩍 넘는 거대 빌딩들이 빽빽이 줄지어 마천루를 형성하고 있다. 위브더제니스, 제이드 등 명품에나 붙일 법한 제목의 신축 아파트들이 밤낮으로 바다의 역사와 경쟁하고 있는데, 나는 그게 홍콩을 닮지 않았냐며 유리에게 소리쳤다. 20년간 볼 수 없었던, 실로 급격한 도시화가 만들어낸 기괴한 풍경이었다.
도시화의 빠른 속도만큼 부산의 난개발 뒤에는 웃지 못할 일화들이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에 있었던 미월드의 사례다. 광안리 옆에 자리 잡은 미월드는 나름 부산 시가지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였다. 좁은 부지 탓에 놀이기구가 얼마 없었지만 광안리의 온전한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었던 자이드 드롭은 시민들에게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미월드 옆으로 진로비치, 자이언트 같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며 그곳의 소음을 두고 거센 민원이 제기된 것이다. 좁은 면적만큼이나 권위가 없었던 미월드는 민원을 피해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다 결국 폐장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일화는 한창 주변 아파트들의 텃세에 고통받던 시절, 미월드를 가면 놀이기구를 탈 때 이용객들의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마스크를 나눠주었다는 사실이다. 하얀 마스크에 침을 잔뜩 바른 채 우리는 자이드 드롭에 올라 고공낙하를 기다렸다. 얼마 후 부산 밤바다, 그 희소한 풍경을 향해 쏟아지던 사람들의 탁한 비명은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
놀이동산에서 두려움을 삼켜야 하는 도시는 실로 부산이 유일했을 것이다. 그러한 주먹구구식 행정이 만연화된 도시였던 부산은, 또 그러한 거침없는 행보 덕분에 홍콩을 압도하는 야경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무튼 광안대교의 황홀 찬란한 밤 조명을 바라보며, 나는 서하와 유리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