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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Aug 21. 2023

사람은 사실 고쳐 쓰는 거다

아빠 자격 취득기

아이를 망설였던 첫 번째 이유: 성격 차이


 아이를 원하게 된 과정이 마냥 순조롭고 핑크빛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사랑해서 만났고 결혼까지 했지만 서로를 온전히 인정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를 설명하는 유명한 농담 중 '여자친구와 진짜 재밌는 하루를 보냈는데, 여자친구가 집에 안 가는 게 결혼이다'라는 말이 있듯 결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삶의 모든 시공간에 침투하고야 만다. 근 30년을 형성해 온 나만의 사상과 자유가 너무 좋고 익숙한데,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온몸으로 부딪혀 그것들을 깨부수려고 한다(…).


 흔히 성격 차이로 뭉뚱그려지는 갈등지점 중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되는 것은 '관계'였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명절에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는 가부장적인 가풍에서 자랐으나, 나는 외동아들이었고 아내는 두 자매 중 장녀였다. 때문에 나는 어련히 아내가 그런 문화에 익숙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내는 오히려 권위적인 분위기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매우 달랐다. 나는 '우리 아들 최고' 문화에서 자랐으므로 부모님이 항상 좋았고 나도 그 기대에 부응하며 순종하는 것이 매우 당연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기에 장인장모님과 애증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마음과 표현이 다르다 보니 갈등 장면도 많았다.


 당연히 이해가 어려웠고 꽤나 잦은 충돌이 일어났다. 회사 위치로 인해 본가에서 10분 거리에 신혼집이 있었기에, 부모님과 연관되는 일이 발생하면 나는 웬만한 스릴러 영화를 능가하는 서스펜스를 체험하곤 했다. 아무리 봐도 천사 같은 나의 부모님에 대해 아내는 왜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지, 신혼집에 가는 게 부담이 될까 봐 만날 일이 있으면 본가로 오라고 하시는 데도 무슨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알 수가 없었고, 고성이 흔히 오가기도 했다.


 나는 아내가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우리 부모님을 모욕하는 것으로 느꼈고, 아내는 자신의 입장보다 언제나 부모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익숙한 도시에 계속 살게 됐고 직장과 본가가 모두 10분 거리인 신혼집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평온하게 살게 되었으므로 아내가 나의 질서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반면, 아내는 결혼으로 인해 전혀 연고가 없는 낯선 도시에 신혼살림을 꾸리고 이직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로서는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던 남자가 결혼한 후에는 '너도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女: 당신 변했어...  男: 응 아니야~



화내는 방식마저 화가 날 수 있다니


 또 다른 갈등요소는 '대화의 방식'이었다. 아내와 나는 취향이나 성향, 가치관 심지어 애정 표현까지 대부분이 잘 맞는 나름대로 천생연분이다. 하지만 대화의 방식과 갈등해결의 방식이 너무도 달랐기에, 한 번 핀트가 엇나가게 되면 정말 심하게 싸우고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곤 했다.


 나는 불과 같은 사람이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타올라 재가될 때까지 하고, 하기 싫은 일도 인상을 구겨가면서 일단 해치워버리곤 한다. 혹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생기면 내가 정당한 이유 100가지를 대다가(별 근거는 없음) 제 성질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다 뛰쳐나가 버린다.


 반면 아내는 물과 같은 사람이다. 일을 꾸준히 지속가능하게 계획적으로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아니, 못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생기면 내가 내뱉는 말들을 차분히 분석하다가, 틀린 이유를 대거나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침묵한다.


 이러다 보니 우리의 대화는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한번 삐끗하면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내의 반응에 약이 오르거나 답답해 미칠 것 같았고, 아내는 내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지 심각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서로에게 그러지 말 것을 끝없이 요구했지만, 서로가 바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우리에게 자녀라는 주제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었다.



사랑하니까 고쳐 쓸 거야


 반복되는 갈등 속에 여러 번 상대의 밑바닥을 보게 되다 보면 아무리 좋은 사이라고 해도 질려버리기 마련이다. 우리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매번 같은 포인트에서 절망하다 보니 오히려 것만 개선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데이터 기반형 희망이 생겼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지진 않았음을 믿었기에 갈등이 끝난 뒤 그 갈등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 난 당신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면 좋겠어.

 아내: 난 정확하게 말하는 게 좋아서 시간이 필요해. 너야말로 내가 말하기 전에 뛰쳐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원래라면 여기서 협상결렬로 대화는 끝난다)

 나: 그래... 그럼 다음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나가볼 테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말을 해줘.

 아내: 바로 말할 수 없을 수 있어서 장담은 못하지만... 노력해 볼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한 번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몇 번에 걸쳐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게 되는 경험이 생기면, '우리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다시금 생기고 서로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물론 이것만으로 나아진 것은 아니고, 전문가에게 부부상담을 10차례 이상 받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다했다)


 관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이해가 안 돼'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나는 아내를 이해하려고 했고, 장인장모님과도 살갑게 지내지 못한 아내가 낯선 환경에서 나의 부모님과 친근하게 지내기를 원했던 것은 나의 이기심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 반대로 아내는 내가 왜 K-효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했고, 나의 부모님 그리고 장인장모님과의 관계를 한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점점 좋게 만들어 가는 노력을 다하게 됐다.


 이러다 보니 아는 사람은 아는 '5가지 사랑의 언어'와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래 아내는 '함께하는 시간'이, 나는 '인정하는 말'이 제일 중요한 언어였지만, 결혼 7년 차인 지금은 '함께하는 시간'으로 같아졌다.(해당 내용은 부부 대화에 많은 도움이 되니 이은주 작가님의 잘 정리된 브런치 글 하나를 참고해 보시기 바란다 부부대화, 사랑의 언어 테스트)


 결국 질풍노도와 같았던 우리의 '성격 차이'는 우여곡절을 거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사람은 원래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내가 남을 고치려 할 때 적용되는 말이다. 사랑하는 배우자, 나아가 만나게 될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가 나를 고쳐 쓰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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