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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Aug 23. 2023

나는 나를 포기할 수 있을까?

아빠 자격 취득기

아이를 망설였던 마지막 이유: 전 아직 어린데요


 다소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일까. 아니면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여서일까. 우리는 한 집에 사는 것 빼고는 연애와 결혼의 다른 점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십 년 넘게 부르던 이름 대신 여보라고 불러봤지만 영 입에 붙질 않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느새 웃음보가 터지기 일쑤였다. 기억 속엔 아직도 스무 살의 모습이 남아있을 정도로 서로가 너무 어려 보인 탓에 서로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지표들도 우리를 아직 청년에 머물게 했다. 보통 만 34세까지는 넉넉히 청년으로 인정되었으니 결혼 후 5년 간을 젊은이로 살아도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인구소멸위기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 기준을 만 49세(…)까지도 늘린다고 하니 괜히 지천명까지 마음이 든든해 지곤 한다.(관련기사)


 이렇듯 스스로를 아직 어리거나 젊은 존재로 생각하다 보니 아이를 낳는 것은 너무나 대단한 일로 느껴졌다. 당장 우리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24세에 나를 낳으시고, 29세에 벽돌로 우리가 살 집을 지으셨으며(?), 32세엔 직업적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셨다. 특히 자녀에 있어서는 이제야 계획에 들어선 나보다 무려 12년을 앞서 가신 것이다. 그리고 12살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슈퍼맨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두 번째 에어프라이어를 가지는 것도 나쁘진 않...)


 아내도 마찬가지다. 장인장모님의 옛 시절을 듣노라면 뭔가 한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듯 거의 어린이처럼 느껴지는 서로의 부족함은 해학적인 위로가 되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밀린 집안일을 집안 대소사처럼 치르고, 미라클모닝에 관한 책을 읽다 늦잠을 자고,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지만 로켓배송을 좋아하는 모순 가득하지만 용납 가능한 삶은 끝장나는 것이다. 뭔가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가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하고 싶은 건 또 왜 이리 많은지


 국가공인청년은 할 수 있는 게 많고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아내와 나는 각종 청년 대상 특강이나 이벤트, 행사에 참여하기를 즐겼고 소소한 체험들로 추억의 장을 꾸몄다. 또 각종 교육의 기회나 혜택도 많이 누려 실제 업무나 취업활동 등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언젠가 먼 훗날에는 이렇게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하여 원격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야심찬 꿈도 품었다.


 자격증 취득이나 대학원 진학 등 학업에 대한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딴 건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많은 자격증에 도전했고, 회사와 병행하며 다닐 수 있는 특수대학원에 지원해 보기도 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아내와 달리 학부 졸업에 그친 나는 딱히 공부에 재능이 있진 않지만 왠지 관련 업무 분야의 석사까지는 마쳐보고 싶은 교육욕(※주: 교육열과 다름)이 있었고, 사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리고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하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일들이 되고 만다. 물론 지인 중 아이들을 키우며 뒤늦게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알파맘도 둘씩이나 있지만, 나와 아내는 그런 삶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디지털 노마드도 안녕이다. 브런치 구독자 몇만 명 돌파를 시작으로 초 유명작가(제발)라도 되지 않는 이상 꼼짝없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알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영심이(아내의 별명)



이제 진짜 어른이 될 시간이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기만 한 어린(혹은 어리고 싶은) 부부이지만, 우리는 아이라는 세계를 만났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를 타인이라기보다 '나의 확장'으로 인식했기에 갈등도 많았지만 용서도 많았다. 예를 들면 집안일을 두고 싸운 적은 손에 꼽았다. '나도 피곤하니까, 당연히 상대도 그럴 수 있지' 이런 마음이 디폴트였기에 우리의 이해의 범위는 바다보다도 넓었다.


 그러나 자녀를 계획하게 되면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용납의 미덕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용납한들 해야 할 일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며, 아이는 어른으로서 우리 부부가 육아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나갈 것을 요구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는 우리가 맞는 첫 번째 '완벽한 타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7년이라는 충분한 시간과 고민, 그리고 준비 끝에 아이를 맞이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어른의 길을 가보고자 한다. 내가 주인공이었던 나의 세대를 넓혀서 아이를 만나고, 언젠가 그에게 온전히 전달해 줄 새로운 세대를 살아가고 싶다. 자유로운 시간과 편한 감상들, 실현 가능했던 소수의 꿈들과 다수의 몽상들이 여전히 나를 사로잡겠지만 이들을 모두 차치할 아이라는 행복이 내게 생겼다.


“There is no path to happiness.
Happiness is the path.”


 불가의 한 경구처럼, 나의 어린 시절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매었던 시간이었다면 이제 내가 걷는 이 길이 행복임을 깨닫는 진정한 어른이 될 시간이다. 성격 차이나 경제적 여건 등이 아이에 이르는 과정이었다면, 어리디 어렸던 나의 삶을 포기하는 일은 아이로부터 시작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고 싶은 그 길. 우리는 오늘도 아이에게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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