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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Aug 22. 2023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그냥 아빠

아빠 자격 취득기

아이를 망설였던 두 번째 이유: 경제적 여건


 결혼을 위한 경제적 준비가 전혀 없었던 우리는 말 그대로 맨땅에서 시작했다(이전글: 결혼할 결심). 신혼집을 마련할 땐 제일 집값이 싼 지역의 아파트도 아닌 저층 빌라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었고, 그마저도 절반은 회사 대출지원이 있었기에 장만 가능했다. 나름 애정을 담아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이사하던 날 짜장면도 맛있게 먹었지만 지어진 지 40년은 족히 된 건물에서는 툭하면 바선생이 튀어나왔고, 그때마다 나는 동화 속 왕자님처럼 아내를 위해 용감히 벌레들을 무찌르곤 했다.


 주위에 비해 일찍 결혼한 터라 신혼집에 서로의 친구들이나 직장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곤 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집의 중후한 철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온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상당했으리라 짐작된다. 정말 친한 친구도 세 번 이상 방문한 적은 없으니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이후 지인들의 집들이에 초대될 때마다 나와 아내는 우리 집의 초라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신축 아파트에라도 다녀오는 날에는 당당히 그들을 초대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물론 이런 극한의 상황이 된 이유는 나와 아내 모두 빚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회사대출 외 금융권에서는 한 푼도 대출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긴 하다. 심지어 청약에 당첨되어 놓고도 대출 부담에 대한 망설임으로 포기한 경험도 있었다. 양가 부모님이 빚 때문에 어려운 경험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데도 어쩜 그렇게 돈 못 버는 경제관념을 가졌는지 신기하다. 이것 역시 천생연분인 것 같다.


 이렇듯 '하우스가 제일 푸어'한 상황에서 금융문맹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결국 5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회사대출을 다 갚음으로써 부채 제로까지 달성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이었다면 훌륭한 일로 신문에 나와야겠지만 일반 가정으로서는 그냥 희한한 케이스일 뿐이다. 이제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부채가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있기에 여유가 많지는 않다. 다만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었기에 큰 불편은 없다.


 그런데 우리 부부야 소득과 소비에 대한 철학이 대체로 비슷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상호 견디기를 작정했다지만 이런 생활에 아이를 원하는 것이 맞을지와 행여 자녀가 경제적인 이유로 좌절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그만큼 돈은 중요한 문제였고, 자녀 계획에 있어 제법 중요한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었다.


자녀계획에서 돈을 외면할 수 있을까?



모든 세대가 한없이 불행해질 수 있는 비극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점하고 있는 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특히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며 실질소득이 낮아지고, 매체의 발달로 비교가 일상이 되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사실상 모든 세대에서 돈이 절대적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이후로 이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자신의 집이 전월세인지 자가인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돈을 잘 벌 수 있는지가 장래희망의 척도가 되었다. 젊은 층은 말할 것도 없다. N포세대, 헬조선, 수저계급론 등 경제적 여건을 바탕으로 한 기상천외한 신조어가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며 청년의 삶을 난도질하고 있다. 중장년층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자녀 교육은 물론 품위유지를 위해 골프를 칠 수 있는지, 은퇴 후 노후 준비가 되어있는지 정도에 따라 그룹핑이 되고 보이지 않는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다.


 때문에 모든 세대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 7번째로 부유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는 이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최근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38개 회원국 중 35번째로 행복하며 그 뒤에는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3개국이 있을 뿐이었다.


하락하는 한국인의 행복감 변화추이(2023. 국회미래연구원)


 사회적 현상이 이럴진대, 혼자서 고고하게 세상 욕심을 버리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가진 돈보다 누군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가 더 중요한 사회에서 돈과 전혀 무관하게 행복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은 스스로도 속을 정도의 위선자거나, 극소수의 인격자일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욕망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슬프게도.



'그냥' 부모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과연 나는 자녀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무책임한 부모가 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삼시세끼 먹이고, 초중고 시절 필요에 따라 학원 1~2곳을 보내고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을 정도라면 부모로서 나름의 책임을 다 할 수는 있지 않을까?(물론 이 중에는 앞으로 확보해 나가야 하는 여건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 라떼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를 외치는 것이 당연했다면, 요즘은 능력 없는 부모로부터 '낳음 당했다'는 말이 자조적으로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 자녀와 만나는 행복을 포기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은 가정교육과 소통의 영역에서 책임감 있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국, 아내와 나는 절대적으로 부유하지도 않고 절대적으로 가난하지도 않은 우리의 삶을 사랑할 용기가 있기에 아이에 대한 용기도 내보기로 했다. 아이가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라길 바란다면, 우리부터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의 가족이 될 아이와의 소중한 만남, 그것이 주는 행복은 누구와의 비교로 생기거나 돈으로 좌우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경제관념과 생각을 비추어본다면, 부자 아빠는 확실히 아닐 것 같지만(…) 나는 우리 아이가 아빠라는 말의 수식어에 '부자'나 '가난한' 따위를 붙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아빠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냥' 아빠가 그 자체로 얼마나 든든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인지를 아이가 알도록 하고 싶다. 그것이 아빠로서 나의 출마의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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