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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Aug 25. 2023

지방에 살어리랐다

아빠 자격 취득기

뜻밖의 처가살이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나의 이직 조건은 첫째 워라밸이 좋을 것. 둘째 처가에서 가까울 것이었다.(이전글: 날카로운 첫 회사의 추억) 처가는 제법 시골이면서도 제법 도시인 도농복합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필요한 기반시설이나 편의시설은 거의 다 갖췄으면서도 실개천 지줄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가 주는 피로함에 넌덜머리가 났던 나는 가끔 처가에 갈 때마다 "아, 이런 목가적인 곳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외치곤 했다. 물론 아내도 부모님을 좀 더 자주 뵙고 싶어 했기에 여건만 허락한다면 불가능한 꿈은 아닌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야말로 덜컥, 처가에서 가까운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면서 반농담 식의 꿈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장인장모님은 잘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고 내려온다니 걱정이 크셨지만, 이내 나의 혼이 담긴 인생 브리핑에 마음을 놓으셨다. 다만 아내도 직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나는 의도치 않게 약 한 달간 말 그대로 방 한 칸을 얻어 아내 없는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다.


 졸지에 생전 키워본 없는 아들을 키우게 장모님은 곤란하셨겠지만 최선을 다해 사위 대접을 해주셨다. 새로 다니게 직장으로 가는 차편지리 등을 설명해 주시고 매일 아침 따뜻한 밥으로 격려해 주셨다. 맞벌이를 하느라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기가 힘들었던 나에게는 오랜만에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찌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한 달이 지나자 장모님은 아주 적극적으로 우리가 집을 알아봐 주셨고, "장모님 그냥 일단 이 방에서 계속 살까요?"라고 말하면 깜짝 놀라시며 당신은 몰라도 내가 불편해서 절대 안 된다고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살라고 배려 가득한 말씀을 해 주셨다.


 결국 우리는 장모님의 지론인 '죽이 식지 않을 만한 거리'새 집을 구하게 되었고 언제든 걸어서 처가에 갈 수 있는 만족스러운 환경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아내는 장인장모님과 가깝고 자신이 성장해 온 익숙한 동네에 다시 돌아오게 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다짜고짜 내려온 사위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장모님(SBS 자기야, 2013)



일단 집이 해결됐다


 40년 된 저층빌라, 그마저도 5년이 지나서야 전세 대출을 다 갚을 수 있었던 것이 우리들 신혼의 삶이었다. 그러나 빚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 탓에 청약까지 포기하는 우리 부부에게 도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이전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그냥 아빠).


 같은 직장에 다니고 비슷한 나이지만 어느 지역에 사는지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로 그 사람의 수준이 결정되다 보니 하급지와 중급지, 상급지가 단계별로 정해져 있었고(편의상 부동산에서 쓰는 표현을 차용)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년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중급지 이상에 머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간신히 하급지 전세난민을 탈출한 우리들에게 이런 기가 질리는 환경은 앞으로의 삶을 너무나 아득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남들처럼 디딤돌대출이니 해서 20년, 30년 만기 대출을 당긴다면 중급지 이상에 가서 살 수 있겠으나 그렇게 오랜 기간 대출을 갚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얼마나 힘들고 재미가 없을까. 또 아이라도 생기면 그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 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애를 쓰고 서로 상처를 받아야 할까.


 물론 묵묵히 이런 일을 감당해 나가는 사람들이 대다수겠지만 우리는 '바람직한 도시 직장인의 삶'에 금방 질려버렸고 몇 평짜리, 그것도 공중에 떠 있는 수많은 공간 중 하나를 갖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지방에 내려오자 이런 고민의 상당 부분이 거짓말처럼 해결되었다. 물론 지방이라고 상급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외에는 다 큰 의미가 없었고 어디에 사는지가 곧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기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도시에서는 저층빌라 전세금을 겨우 충당할 수 있었던 예산으로 단번에 번듯한 34평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드디어 집은 비싼 섬김의 대상에서 우리 가족이 머무는 공간이 된 것이다. 주거와 관련한 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앞으로도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안정감을 주었다.


외관만 빼면 우리 집과 비슷한 하천이 있는 타워팰리스(위키디피아)



한달살기? 나는 그냥 계속 산다


 새로 구한 아파트는 구축이긴 하지만 예쁜 조경으로 가득하여 나름 관리가 잘되는 단지인 데다가 낮에는 새소리,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단지 앞에는 산책을 나갈 수 있는 하천과 공원이 10km도 넘게 조성되어 있고 밤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별들이 반짝 거린다. 남들은 한달살기를 하러 와야 머물 수 있는 풍경에 나는 그냥 매일을 머물고 있는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 시설이나 편의, 문화시설이 항상 여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어느 공간엘 가도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간격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분주했던 도시의 기억을 희석시켜 준다.


 물론 도시에 비해 즐길거리가 많지는 않고 대학병원까지의 거리가 멀다든지 하는 단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도시가 맞지 않다거나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지방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나와 아내는 밤이면 한적한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며 별을 헤고 있다. 주말마다 또 다른 지방으로 쉬이 놀러 가는 것도 우리 부부의 취미가 되었다(어차피 서울 사람들은 다 지방으로 놀러 오는데, 이 덕에 관광지화 된 지방은 지방끼리 가깝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미래의 지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레 없던 자녀계획도 생기게 되었다.


 이에 나는 지인들에게 다닐 수 있는 직장만 구할 수 있다면 나처럼 지방에 내려오기를 권하곤 한다. 서울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어리석고 순진한 삶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여백이 행복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도시에 염증을 느낀다면, 미래에 대한 지출과 수많은 걱정들로 가족계획을 세우기가 벅차다면, 한 번쯤 지방행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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