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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Sep 13. 2023

아이 권하는 사회

아빠 자격 취득기

출산율 0.7명의 시대


 지난 8월 통계청 인구동향에 따르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가임기의 여성이 평생 1명도 낳지 않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저출산 상황에 놓여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누군가는 이전의 위정자들을 거론하거나 세대와 성별을 혐오하며 책임소재를 밝히고자 하지만, 현시점에서 대안 없는 추궁은 손쉬운 만큼이나 공허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이 장기화되면서 각종 출산 정책은 나날이 발전해 왔고, 지원과 혜택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자녀를 계획한다면 지금처럼 좋은 때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부모급여 100만원의 시대가 열리고, 지자체는 각종 출산 장려금을 쏟아내고 있다. 전국 최대 수준인 전남 강진군의 경우는 출산 장려금이 5천만원에 달한다고 하니, 당장에라도 전입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쯤 되면 그냥 온 나라가 아이를 낳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수준이다.


 그러나 초저출산 시대의 예비 부모로서 이런 지원들이 당연히 반갑고 든든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직접적인 유인이 되었는지를 돌이켜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이직을 통한 워라밸 개선이나 주거의 안정,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등이 종합적으로 맞아떨어진 데에서 간신히 비롯된 기적이었다. 만약 셋 중 하나라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면 우리 부부는 다른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현금성 지원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만능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마저 자조하는 밈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씁쓸하다(출처: EBS)



'왜 낳아야 하는지'가 빠졌다


 경제적인 접근만으로는 저출산의 복잡 다변한 문제를 풀기 어렵다. 저출산은 분명 인간에 관한 문제이지 동물을 사육하거나 양식하는 일이 아님에도 이는 쉽게 무시되곤 한다. 이를테면 이런 말이 있다.


새도 둥지가 있어야 알을 낳는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출산에 책임이 있는 누군가를 비난할 때 쓰는 말이지만, 이는 역으로 '둥지가 있으면 알을 낳을 것이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새가 아니지 않은가. 집의 유무는 출산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결심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연산이 아님에도, 우리는 어느 순간 철학, 나아가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마저 전부 경제학으로 풀어버리면서 이를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경제 일변도의 접근은 부재한 철학의 곤란함을 상대방에게 쉬이 전가시킨다. 그러다 보니 'MZ세대는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90년대생이 인구가 많으니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골든타임이다.'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혐오와 신뢰가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가는 말이 이상하니 오는 말이 당연히 고울리 없다. 당사자인 가임기 청년층은 패배감에 자조하고 저출산 문제를 역시 이전 세대의 책임으로 전가하며 '알빠노'를 외친다. 그들에게 저출산은 하나의 흥미 있는 이슈일 뿐 결코 자신의 책임일 수는 없는 일이며, 이를 강요하는 것은 국가적 폭력에 불과하다.


 저출산 문제에 혀를 차는 사람들은 청년들에게 과연 '왜 낳아야 하는지'를 말해줄 수 있을까? '그래도 애가 하나는 있어야지', '국민연금 고갈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대한민국 소멸을 막아야 한다', '이대로라면 외국인들이 가득 차게 된다' … 단언컨대 이 중 어느 하나도 '아! 그렇구나 당장 아이를 낳아야겠구나!'라는 결심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세상에 국민연금 못 받을까 봐 아이를 낳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약 있다면 정말 큰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에게 출산과 관련한 어떤 비전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대출이자 갚기도 바쁜데 출산? 어림도 없지. 명분을 가져오시오(출처: 영화 범죄와의 전쟁)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기혼자이자 예비 아빠. 나는 어느새 갖고 싶은 것보다 잃기 싫은 것이 많아지는 엄연한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우려하는 바도 기성세대와 비슷하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나라가 잘 굴러가야 할 텐데. 또 내 자녀가 살아가기에도 좋은 나라여야 할 텐데. 그러나 이것은 나의 욕구일 뿐 타인에게 출산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아이에 대해 잘 모르고,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아이를 권하는 사회.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의 현주소다.


 물론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은 임신과 출산을 결심한 부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 것이니 우리 부부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와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정책이 현금성 지원 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라져 가는 공동체적 가치와 행복을 어떻게 되살리고 접하게 할 것인지, 경제적으로 다소 부족하더라도 부모라면 언제나 환영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어떻게 심어줄 것인지. 이런 근본적인 부분에서 해답을 찾아야만 저출산 문제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저출산 관련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사자로서, 나는 끊임없이 이런 문제를 고민해 나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런 고민을 포함한 저출산에 관한 글도 따로 기획해 볼 생각이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저출산을 망국의 지표로 대상화하기보다 어떻게 아이를 낳고 싶게 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최근 큰 반향을 일으키고 개인적으로도 감명을 받았던 한 회사의 광고에서 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결혼하고 출산한 가정이 어떻게 부대끼는지를 확인시키고, 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의 삶이 계속된다(Life still goes on)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끼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사회의 곳곳에 이런 울림이 전해지길 바라며, 이 훌륭한 광고의 링크를 남기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의외의 분야(건설 회사다…)에서 참 보석 같은 광고를 만날 수 있었다(출처: KCC SWITZEN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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