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무솔 Oct 22. 2023

아내가 회사를 그만뒀다

아빠 자격 취득기

너무도 당연했던 맞벌이의 세계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의 일상은 단순했다. '각자가 번 돈으로 공동의 생활을 유지한다.' 결혼 후 6년간 이 원칙에 변동은 없었고, 덕분에 부동산 같은 자산은 없을지언정 당장 들어오는 현금은 제법 넉넉했다. 둘 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갚을 돈도 없었으니 생활비는 꽤 넉넉했고, 기분에 따른 소비나 자유로운 저축도 가능했다. 또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나름 잘 나가는 대기업이었기에 1년에 한 번쯤은 흔히 말하는 '성과급 잔치' 비슷한 것이 벌어졌는데, 이런 목돈이 생길 때면 별 고민 없이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돈 관리를 귀찮아하는 성격의 나와 적당히 절약하는 습관이 밴 아내는 재정관리에도 궁합이 맞았다. 나는 약간의 잔돈을 제하고 월급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보냈고, 혹시 나의 잔돈을 넘어 필요한 것이 있으면 큰 스트레스 없이 아내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물론 잘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집행과 관련한 의사결정에는 합리적인 토론이 늘 함께 했으므로 우리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다른 이유로는 다퉜어도 돈 때문에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돈은 있으면 좋은 것이요 없으면 다소 불편한 것뿐이라는 선비 같은 생각은 약간의 변화를 맞기도 했다. 이직으로 인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 시간의 대가는 꽤 비쌌고, 수입은 30%가량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퇴사하면 당연히 다 갚고 나가야만 하는 사내대출금 상환금이 더 이상 지출되지 않았기에 가계의 월간 운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소 슬프지만 그냥 계속 대출이 있는 것처럼 생활하면 됐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비롯한 문화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여가비용을 아낀 탓에 우리 가정의 경제여건에는 여전히 청신호가 켜져 있었다.



오빠만 믿...어!...그만둔다고?


 결혼 7년 차, 딩크의 기로에서 아이가 있는 삶을 선택하면서 아내는 내게 제안처럼 보이는 선언을 했다.


 "회사를 다니고 야근도 하는 환경에선 임신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임신 후에도 자신이 없어."


 아무것도 없이 결혼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빠만 믿으라며 큰 소리 뻥뻥 쳐왔던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막상 그 말을 듣게 되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 그럼 그만둬야지 오빠만 믿어(안돼... 제발)"


 그러나 나의 허세를 의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아내는 알겠다며 해맑게 웃었고, 나는 가장의 무게를 본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맙게도 아이가 바로 찾아와 그만둔 보람이 차고 넘쳤다는 것이다. 임신 후 육아휴직의 방법도 있었지만(요즘은 사전 육아휴직도 가능하다!), 우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고 아내는 지난 10년간 매여있던 회사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더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당장은 줄어든 수입이 체감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수입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보냈고, 아내는 늘 하던 것처럼 알뜰살뜰하게 가정 경제를 운영했다. 그러나 숫자에 불과하던 돈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벌이로는 기존의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생각보다 많은 고정비용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끔 기분전환 삼아 지르던(?) 물건들은 이제 모두 옛 추억거리가 되어갔다. 가끔 양가 부모님 댁에 보내던 선물이나 식사 대접은 내가 효자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사치에 불과했다. 다행히 자녀 소식을 들은 부모님들 모두가 이전에 볼 수 없을 만큼 행복해하셨지만.


숫자에서 실재가 된 돈



외벌이가 주는 풍성함


 2023년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물가가 많이 오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실제가 어떻든 내가 느끼기에는 살인적인 물가가 무엇인지가 몸소 체험되는 기분이다. 두부와 우유, 김치 같은 필수적인 먹거리들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고, 동네 마트 4~5곳의 시세를 늘 파악하곤 한다. 과일은 A마트가 싸고, 주전부리는 B마트가 싸고… 이런 식이다. 대체적으로 아끼는 것과 구체적으로 아끼는 것은 분명한 차이있어서, 때론 꽤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물건을 집었다가 놓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도 많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출산 정책과 지원금 등은 어려운 와중에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각종 임신 출산 지원 정책이라든지, 부모급여가 100만 원으로 올랐다거나 하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현금성 지원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더라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 임신 소식을 들은 주위의 축하와 도움들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위로가 되곤 한다. 소소하지만 우리 부부를 생각해 주는 순간이 오면, 우리도 사랑을 다시 베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내의 퇴직으로 가정 경제는 긴축 국면이 되었지만 나는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웃으며 아내의 퇴직을 환영할 생각이다. 각자의 일에 지쳐 평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던 우리 부부에게는 이제 진짜 저녁이 생겼다. 아내의 미소와 함께한 출근과 퇴근 후의 따뜻한 인사,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깃든 집안의 풍경은 외벌이만이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이다. 나는 농담으로 종종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들은 산후조리만 하는데 당신은 산전조리도 충분히 하네"


 그럴 때면 아내는 한껏 고맙다며 미소를 짓는다. 철없는 가장의 생색내기에 불과하지만 나도 아내도,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도 서로에게 감사하며 가꾸어갈 가정이 있다는 것. 나는 그것에 행복한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이전 09화 아이 권하는 사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