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자격 취득기
돈 관리를 귀찮아하는 성격의 나와 적당히 절약하는 습관이 밴 아내는 재정관리에도 궁합이 맞았다. 나는 약간의 잔돈을 제하고 월급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보냈고, 혹시 나의 잔돈을 넘어 필요한 것이 있으면 큰 스트레스 없이 아내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물론 잘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집행과 관련한 의사결정에는 합리적인 토론이 늘 함께 했으므로 우리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다른 이유로는 다퉜어도 돈 때문에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돈은 있으면 좋은 것이요 없으면 다소 불편한 것뿐이라는 선비 같은 생각은 약간의 변화를 맞기도 했다. 이직으로 인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 시간의 대가는 꽤 비쌌고, 수입은 30%가량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퇴사하면 당연히 다 갚고 나가야만 하는 사내대출금 상환금이 더 이상 지출되지 않았기에 가계의 월간 운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소 슬프지만 그냥 계속 대출이 있는 것처럼 생활하면 됐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비롯한 문화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여가비용을 아낀 탓에 우리 가정의 경제여건에는 여전히 청신호가 켜져 있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더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당장은 줄어든 수입이 체감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수입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보냈고, 아내는 늘 하던 것처럼 알뜰살뜰하게 가정 경제를 운영했다. 그러나 숫자에 불과하던 돈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벌이로는 기존의 지출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생각보다 많은 고정비용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끔 기분전환 삼아 지르던(?) 물건들은 이제 모두 옛 추억거리가 되어갔다. 가끔 양가 부모님 댁에 보내던 선물이나 식사 대접은 내가 효자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사치에 불과했다. 다행히 자녀 소식을 들은 부모님들 모두가 이전에 볼 수 없을 만큼 행복해하셨지만.
그러나 정부의 각종 출산 정책과 지원금 등은 어려운 와중에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각종 임신 출산 지원 정책이라든지, 부모급여가 100만 원으로 올랐다거나 하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현금성 지원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더라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 임신 소식을 들은 주위의 축하와 도움들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위로가 되곤 한다. 소소하지만 우리 부부를 생각해 주는 순간이 오면, 우리도 사랑을 다시 베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내의 퇴직으로 가정 경제는 긴축 국면이 되었지만 나는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웃으며 아내의 퇴직을 환영할 생각이다. 각자의 일에 지쳐 평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던 우리 부부에게는 이제 진짜 저녁이 생겼다. 아내의 미소와 함께한 출근과 퇴근 후의 따뜻한 인사,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깃든 집안의 풍경은 외벌이만이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이다. 나는 농담으로 종종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럴 때면 아내는 한껏 고맙다며 미소를 짓는다. 철없는 가장의 생색내기에 불과하지만 나도 아내도,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도 서로에게 감사하며 가꾸어갈 가정이 있다는 것. 나는 그것에 행복한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