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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무솔 Aug 20. 2023

딩크는 거창하고 그냥 둘이 좋아서

아빠 자격 취득기

둘이서 행복한 것이 디폴트입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다양한 것처럼 아이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행히 나와 아내는 이 점에서 마음이 일치했다. '우리가 행복한 것이 먼저이고, 아이는 둘 다 원해야만 갖는다.' 연애와 결혼을 통틀어 오랜 기간 구축된 합의가 있었기에 우리는 먼저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주어진 환경과 성격이 다르기에 집중한다고 해서 늘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좋지 않았던 날에는 수없이 흔들렸고, 좌절했다. 그런 때면 나는 아빠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곤 했다. 나 하나 다스리기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아이라는 또 다른 우주를 무턱대고 만수 있겠는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인 조건보다도 인격이 성숙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문제였다. 둘만 지내도 이렇게 좋고, 충분한 것 같은데 굳이...? 아이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보기에는 좋았지만 그 치열한 전장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중에 혼자가 되고, 적적해질까 봐. 혹은 둘만의 세상이 재미없어질까 봐 아이를 갖는다면 그건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와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부부금슬이 너무 좋아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옛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날들이 지나자 어느덧 우리는 그냥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부부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현상이지 결정은 아니었다. 가만히 숨 쉬고 있는 상태가 결정일 수 없는 것처럼, 아이 없이 둘이 있는 그 상태가 결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그런 결정을 한 사람들'이 되어갔다.(물론 생물학적인 나이가 있으니 딩크로 명명된 것이 마냥 억울해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오지랖과 관심의 차이


 아이를 갖지 않는 타칭 딩크 부부가 되면 정말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내색하진 않으시지만 늘 궁금한 눈동자의 부모님부터 다짜고짜 빨리 아이를 낳아서 효도하라는 친척들, 당연하다는 듯이 애가 몇 살이냐고 묻는 직장동료까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없는 결혼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한 미혼인 친구는 자녀 생각이 없던 당시의 나를 보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애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을 왜 해?"


 또 한 직장상사는 반 호통을 치기도 했다.

 "어디 이기적으로 살려고 해! 애를 낳아서 애국을 해야지!"(실제로 한 말)


 둘 다 막말임은 분명하지만 나름 이해가 가는 대목들은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아이가 없다면 연애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결혼을 할 이유가 없다는 소견에서 나온 것이고, 두 번째 호통은 저출산 시대에 요즘 것들의 무책임을 지도편달하고자 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가 어쨌든 방식이 무례하므로, 이는 오지랖에 해당한다.


 반면 아예 티가 날 정도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거나, 아주 조심스럽게 '아이는... 아직...?'이라며 궁금해하기만 하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있는 그대로 아이에 대한 우리 부부의 생각을 말하곤 했지만 이런 종류의 리버스 오지랖은 고마우면서도 괜한 멋쩍음을 남기곤 했다. 차라리 아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묻거나 자신의 경험, 가치관 등을 나눈다면 서로의 대화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간혹 진솔한 마음으로 우리 부부와 아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려 깊음이 고마웠고 아이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만약 누군가의 가족계획이 궁금하다면 단순히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호구조사보다는 그 가정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 어떨까? 질문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오지랖으로 오해받지 않을 것이고, 설령 의도치 않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부부라 할지라도 오히려 적잖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당신의 가정이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의 행복이 아이에게 닿기까지


 딩크 선언을 당해버린 우리 부부에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지속적인 대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결정 매니아인 나에게도 이는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아이를 그렇게까지 원하는지 모르겠고, 혹 원한다 한들 아내를 내 뜻대로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왠지 모를 압박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간과 주위의 시선에 쫓겨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곤 했다.


 "이대로도 너무 좋지 않아? 아이가 있으면 지금보다 더 좋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 근데 지금만으로도 참 좋아."


 누군가 보기에는 철없고 한가진 소리일 수 있겠지만, 이것이 우리 부부가 서로를 대하고 아이를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이 담긴 말이 오갈수록 모든 일들에 대해 서로의 신뢰가 깊어져 갔고, 우리는 아주 서서히 또 다른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아내의 몸에 대해 나는 아무런 주장을 할 수 없었지만, 그 마음만은 같이 가꿔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가 없어도 함께한 많은 날들이 대체로 좋았으며, 끝까지 좋을 것이라는 낙관에 이르자 자연스레 아이를 원하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행복하려 한 것이 아닌, 행복이 넘쳐 아이에게 닿은 그 과정이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마침내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좋은 부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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