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 프랑스
지금 이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일주일 열흘 이렇게 휴가를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매달 그렇게 다녀왔으니 나의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종종 이때의 공기를 기억한다. 떠올린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본 곳이다. 남부 프랑스는 내게 그렇게 다가온다. 아를의 벤치에 앉아 우리는 차를 마셨다. 빛이 떨어지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을 때 얼굴 위로 떨어지는 온기 덕분에 잠시 짧은 잠에 들었던 적이 있다. 그토록 적당한 온기와 과하지 않은 색채를 지닌 빛은 처음이었다. 내가 이런 빛을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나.
숙소를 잡은 곳은 마르세유였다. 이 도시에 머물면서 프로방스의 여러 지역을 다녔다. 누군가는 마르세유가 위험한 도시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저 부산처럼 다가왔다. 터프하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좋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일 것이다. 카페 바에 서서 파스티스 한잔을 마시면서 "여기 좋네" 하고 말하니 "아리가토" 하며 바텐더가 고개를 숙였다. 귀여운 사람들.
벌써 몇 년 전이지?
사진이란 건 정말 보물 같다. 잠시 잊고 살았던 인생의 어느 부분이 사진을 보는 순간 훅 머릿속으로 밀려온다. 당시의 공기의 질감마저 느껴질 만큼 사진이란 컨테이너는 많은 것을 담아낸다. 상당 수의 것들은 컨테이너 속에서 오염된다(대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발자국 소리,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 그것들을 떠오르면 나는 그 오염된 것들을 보며 '잊고 있었던 기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한 여행이라면 사진을 보면서 함께 추억이 발화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억 덕분에 나는 즐거울 거 하나 없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 며칠을,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프섬을 보면서, 자 저기가 저기구나 정도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눈앞의 풍광을 더 느긋하게 아무 생각 없이 느끼고 싶었다. 바닷소리 그리운 밤이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다가 없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큰 호수로는 안 된다. 바다가 주는 물길의 생동감은 바다만이 낼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마르세유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르세유는 못생긴 도시구나 싶다. 멀리서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런 도시도 잘 없는데, 왜 그렇게 느껴질까. 그럼에도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축구 경기장 근처에서 우리는 인종차별 하는 애들과 싸울 뻔했다. 심하게 싸우기 직전까지 갔는데 어느 아프리카계 건달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모두가 일순 차분해질 만큼 압조적인 건달 느낌을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말로 뭐라고 하니 조금 전까지 인종차별을 하던 애들이 자리를 떴다.
"티켓 살래? 챔피언스리그여서 티켓을 구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싸게 줄게"
나는 그의 말에 웃고 말았다. 그도 나도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오늘은 이 근처가 시끄러울 테니 다른 안전한 곳에서 노는 게 더 좋을 거라고 말을 하고는 스타디움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렇게 사진 폴더를 자꾸만 뒤지게 되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