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체코
코끝이 시른 3월의 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한 하루였다. 오랜만에 산책도 하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지난 2년과는 확연히 다른 봄의 일상이다. 잃어버렸던 또는 까먹고 지냈던 일상을 어디선가 발견한 듯 반가운 하루들을 맞고 있다.
동네에 이런 산책로가 있다는 건 축복 같은 일이다.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오래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지나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정리된 생각을 차곡차곡 밟으며 다시 걷다 보면 어느새 산책로 끝에 다다른다. 생각 정리를, 산책을 멈춰야 하는 순간에 다다른 것이다.
겨울은 끝자락에 왔고
봄은 시작에 섰다
코끝이 자꾸만 간지러운 걸 보니 계절이 바뀌는 게 실감이 난다. 한 계절이 가고 또 하나의 계절이 올 때면 늘 이렇다. 숨을 쉬기 힘들고 몸은 피곤해진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곳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내가 사라져도 이 길은 그대로 있을 것이며, 오늘 마주친 모든 이들이 사라져도 프라하는 다른 세대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맞이할 것이다. 아주 큰 대재앙이 없는 이상 이는 필연하다.
그래서 이 도시가 좋다.
여행지처럼 들렸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할 어느 곳'으로 돌아가겠지.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미래를 잊지 않게 해 준다. 그렇게 자주, 이 도시 위로 쌓인 시간을 바라본다.
왔다가 간다
프란츠 카프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여행기처럼 느껴진다. 재미있는 여행기는 아닐지 몰라도 모두가 모두 나름의 여행기를 온몸으로 쓰고 있다.
성실하게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좋겠지만 나에게도 좋다고, 오늘 생각했다. 지금만큼 행복한 시절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딱히 불만이 없으니까 남이 무엇을 하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레
나와 나의 주변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