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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냥꾼의섬 Mar 23. 2023

아홉 번째 날

마르세유, 프랑스


지금 이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일주일 열흘 이렇게 휴가를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매달 그렇게 다녀왔으니 나의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종종 이때의 공기를 기억한다. 떠올린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을 본 곳이다. 남부 프랑스는 내게 그렇게 다가온다. 아를의 벤치에 앉아 우리는 차를 마셨다. 빛이 떨어지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을 때 얼굴 위로 떨어지는 온기 덕분에 잠시 짧은 잠에 들었던 적이 있다. 그토록 적당한 온기와 과하지 않은 색채를 지닌 빛은 처음이었다. 내가 이런 빛을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나.



숙소를 잡은 곳은 마르세유였다. 이 도시에 머물면서 프로방스의 여러 지역을 다녔다. 누군가는 마르세유가 위험한 도시라고 했지만 내게는 그저 부산처럼 다가왔다. 터프하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좋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일 것이다. 카페 바에 서서 파스티스 한잔을 마시면서 "여기 좋네" 하고 말하니 "아리가토" 하며 바텐더가 고개를 숙였다. 귀여운 사람들.



벌써 몇 년 전이지?

사진이란 건 정말 보물 같다. 잠시 잊고 살았던 인생의 어느 부분이 사진을 보는 순간 훅 머릿속으로 밀려온다. 당시의 공기의 질감마저 느껴질 만큼 사진이란 컨테이너는 많은 것을 담아낸다. 상당 수의 것들은 컨테이너 속에서 오염된다(대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발자국 소리,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 그것들을 떠오르면 나는 그 오염된 것들을 보며 '잊고 있었던 기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한 여행이라면 사진을 보면서 함께 추억이 발화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억 덕분에 나는 즐거울 거 하나 없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 며칠을,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프섬을 보면서, 자 저기가 저기구나 정도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눈앞의 풍광을 더 느긋하게 아무 생각 없이 느끼고 싶었다. 바닷소리 그리운 밤이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다가 없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큰 호수로는 안 된다. 바다가 주는 물길의 생동감은 바다만이 낼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마르세유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르세유는 못생긴 도시구나 싶다. 멀리서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런 도시도 잘 없는데, 왜 그렇게 느껴질까. 그럼에도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축구 경기장 근처에서 우리는 인종차별 하는 애들과 싸울 뻔했다. 심하게 싸우기 직전까지 갔는데 어느 아프리카계 건달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모두가 일순 차분해질 만큼 압조적인 건달 느낌을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말로 뭐라고 하니 조금 전까지 인종차별을 하던 애들이 자리를 떴다.


"티켓 살래? 챔피언스리그여서 티켓을 구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싸게 줄게"


나는 그의 말에 웃고 말았다. 그도 나도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오늘은 이 근처가 시끄러울 테니 다른 안전한 곳에서 노는 게 더 좋을 거라고 말을 하고는 스타디움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렇게 사진 폴더를 자꾸만 뒤지게 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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