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 기회가 온다

이전 직장 사람들은 퇴사자의 성공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본다. 망하라고 빌지는 않지만, 크게 성공하는 모습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저 굶어 죽지는 않을 만큼만 버티고, 회사 안에 남아 있는 자신들보다 눈에 띄게 잘되지만 않기를 바란다. 그 정도가 마음속에서 견딜 수 있는 선이다.


이 감정은 악의라기보다 비교에서 비롯된 불편함에 가깝다. 함께 일하던 사람이 너무 잘 나가는 순간, 내 자리와 능력이 그대로 비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 초기에는 대체로 조용하다. 연락은 뜸해지고, 응원은 형식적인 말로 줄어든다.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라는 말은 자주 듣지만, 실제로 움직여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퇴사자는 이 애매하고 공허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자기 좌표가 흐릿해지는 구간. 마음이 가장 쉽게 꺾이는 지점이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곧 정리되겠지”라고 여겨졌던 작은 회사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넷째 해, 다섯째 해를 넘기기 시작하면 전 직장 동료들의 시선이 서서히 바뀐다. 그때부터 연락이 오고, 문의가 오고, 작은 일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정식 협업 제안도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신뢰는 말로 쌓이지 않는다. 시간 앞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곧 증거가 된다. 버텨온 기록 자체가 하나의 설득력이 된다.


그래서 퇴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포부가 아니다. 오래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단한 비전을 늘어놓기보다, 아쉬운 소리를 줄이고 먼저 매달 직원들 월급을 감당할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수익보다 생존, 생존보다 지속이 먼저다. 오래 버틴 사람이 결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다. 오래 버틴 회사가 결국 더 많은 기회를 붙잡는다. 버텨 온 시간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된다.


퇴사한 사람은 쉽게 기억되지만, 존중은 살아남은 이에게 돌아간다. 버티며 자리를 지킨 사람에게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가 언젠가 기회가 되어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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