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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Oct 24. 2021

나의 역할을 과대평가하지 않기



 네모난 교실에 수많은 우주가 앉아 있다. 신기하면서도 낯설다. 이 서른여 명의 광활함 앞에 나 혼자 서 있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건넨다. 조금 더 탐구하고 조금 더 닿으리라 다짐하며 주문을 왼다. “오늘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이유도 없이 웃는다. 먼저 웃는 것, 그게 나의 역할이다










 우리 학교가 개교한 지 2달,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도 2달이 지났을 때였다. 서로를 낯설어하던 학생들은 어느덧 천방지축으로 날아다녔다. 그중에서도 2학년에 특히 힘든 반이 있었다. 학교생활에 관심도 흥미도 없는 몇 명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게 권력인 양 기세등등했다. 자기 인생인데도 “학교 그만둘 거예요!”를 협박처럼 말했다.


 항상 웃는 얼굴에 인자하기로 유명한 50대 선생님께서 그 반 정후을 교무실로 부르셨다. 아이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선생님께선 보호자와 같이 대화하자며 “아버지 전화번호가 뭐야?”라고 물었다.



 “없는데요.”


 “없긴 뭐가 없어.”


 “진짜 없는데요.”


 “왜 없어?”


 “저희 아버지 돌아가셨는데요.”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울음은 더욱더 서러워졌다. 선생님은 일단 토닥이곤 가보라고 하셨다. 나중에야 이 이야기를 들은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닌데요? 아이 아버지와 전화 통화도 몇 번 했었는데요?”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경력 20년이 넘는 선배 선생님께선 교권침해를 당할 경우 변호사 선임 비용, 정신과 치료비 등을 도와주는 교권침해 특약 보험을 사비로 가입하셨다.





 어느 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모둠 활동을 하는데 정후가 또 소란을 피웠다. 주의를 주자 학습지를 구기더니 쓰레기통에 버렸다. 뭐 하는 행동이냐고 묻자 “필기를 잘못해서요. 다시 주세요.”라고 답했다. 열심히 만든 학습지를 구기면 선생님도 기분 나쁘다고 말하며 학습지를 새로 꺼내는데, 빤히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아, 나도 나중에 선생이나 해야겠다. 조용히 하라고 말만 하면 되고 아주 편하네.”



 빈 교무실에 남아 혼자 엎드렸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온몸이 뜨거워졌다. 이때까지 나는 성격이 잘 맞는 인연과 관계 맺고 잘 맞지 않으면 지나치며 살아왔다. 그게 내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마주 서서 치켜뜬 눈으로 반발하는 타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다. 나는 정말 그 아이가 싫었다. 너도 내가 싫고 나도 네가 싫은데 왜 우리는 서로를 지나치면 안 되는지, 왜 내가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엔 일부러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학교는 아예 잊고 싶었다. 0세부터 2세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엄마의 감정 기복을 그려낸 아라이 피로요의 『난 절대 학대하지 않을 거야!』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모르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요동치는 기분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학교와 전혀 무관한 책을 손에 잡았는데 자꾸만 나의 학교생활이 겹쳐 보였다.


 ‘난 절대 학대하지 않을 거야!’는 이제 막 교직 생활을 시작한 나의 마음과 비슷하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한두 명쯤 생각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리라 다짐했건만 현실은 순탄치 않았다. ‘본능하고도 잘 맞춰나가 보겠어. 반드시 지켜줄게. 절대로 상처 주지 않을 거야.’라는 단호한 각오, ‘아무리 노력해도 짜증이 나는데!’라며 욱하는 기분, ‘이 이유식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이유식을 던진 아이를 향해 나도 모르게 올라간 손,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엄마일까’ 자기혐오로 울다가도 ‘엄마. 아픈 거 사라져라~’ 아이의 한 마디에 더욱 펑펑 우는 나날들.


 아라이 피로요는 문득 자신이 되길 바랐던 모습이 로봇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떠올렸던 건 늘 기운 넘치고 항상 웃는 그런 이미지였는데… 그건 지금까지 만난 어머니들의 좋은 점만 따온 거였다. 이상형…이었던 거 아닐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라고. 1년 내내 기운이 넘치다니 그건 인간이 아니라 편의점이잖아. 늘 웃음을 잃지 않다니 그것도 인간이 아니라 인형이야. 그러니까… 내가 가진 엄마의 이미지는 이상형이고 그 정체는 로봇!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건데…     



 세계의 중심에 선 것처럼 고개를 치켜든 아이에게 속으로 ‘나도 네가 싫어!’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하지만 내가 싫었던 게 온전히 그 아이일까?





 실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나 자신이 싫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나에게 실망했고, 내가 ‘좋은 어른’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 아이의 존재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이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힘겨웠다. 엄마도 사실 아이가 어려운 것처럼, 교사도 사실 학생이 어렵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날을 세웠다. 웃기게도 나와 그 아이는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난 절대 학대하지 않을 거야!』의 주인공이 점점 부모의 역할을 알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나 또한 점점 교사의 역할을 어렴풋이 알아갔다. 조금 더 힘을 빼기, 모르는 척해 줄 줄 알기, 알면서도 져주기, 나의 역할을 과대평가하지 않기, 그리고 받아들이기와 같은 것들을 이해해갔다.    

  

 부모가 되어 모든 것을 짊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힘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야. 네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거지. 난 그걸 아주 조금 도와주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걸 깨닫게 된 뒤로는 어깨가 가벼워졌고 그제야 나는 내 웃음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정후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더니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나는 어쩌면 폭풍 치는 바다에 맞서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교사 달지 님의 노래 <다시 만날 때>의 가사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 딱 하나

 그저 너의 삶에 행복 한 줄기를 더해주는 것

 잊혀지더라도 난 괜찮아

 너의 삶에 더 큰 행복이 쌓여 내가 지워지는 것

 난 언제든 네 편이 돼줄게    


 

 학교는 불완전한 아이가 완전한 어른에게 순응하는 곳이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과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를 탐색하며 관계 맺는 곳이다. 당연히 매번 좋을 수는 없다. 나의 진심이 딱 한 번 전달되기만 해도 괜찮다. 영원히 기억될 필요도, 최고의 교사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제야 나는 내 웃음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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